필리버스터(filibuster). 흔히 의회의 정상적 표결을 막기 위한 의사진행 방해 행위나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대개 부정적 의미로 쓰이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미국 상원은 정원 100명 중 절대다수인 60명의 토론종결 표결이 없는 한 누구나 장시간 연설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수당의 횡포를 막기 위한 견제장치인 셈이다.
2003년 100세를 일기로 사망한 스트롬 서먼드 전 공화당 상원의원은 미 의회 역사상 최장 48년간 의원 재직 기록과 함께 최장 24시간 18분 필리버스터 기록도 보유했다. 한국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의원 시절 최장 5시간 19분을 기록했다.
필리버스터란 말은 해적 또는 약탈자를 뜻하는 스페인어 필리부스테로에서 나왔고 그 근원은 네덜란드어다. 의회의 필리버스터도 정상적 의사진행을 약탈 또는 납치한다는 의미에서 파생된 것이다.
19세기 미국에서 필리버스터는 중앙아메리카 정복을 꾀하는 모험가들을 뜻했다. 그 대표적 인물이 의사이자 변호사, 저널리스트, 용병대장이었던 윌리엄 워커(1824∼1860)였다.
워커는 중앙아메리카에 노예제를 바탕으로 한 ‘백인 제국’의 건설을 꿈꿨다. 백인의 아메리카 침략을 신이 내려준 사명으로 여기던 시절, 미국 남부는 이런 야심가들로 넘쳐 났다.
한때 멕시코 북부에 독립공화국을 건설하려다 실패한 워커는 1855년 5월 4일 용병 57명과 함께 니카라과를 향해 샌프란시스코를 출항했다. 내전 중이던 니카라과 반군의 한 일파에 고용된 용병대장 신분이었다.
그는 불과 몇 개월 만에 니카라과군을 격파하고 수도 그라나다를 점령했다. 워커는 다음 해 스스로 대통령에 취임해 니카라과를 통치했다. 미국 정부도 한때 워커 정권을 니카라과의 합법 정부로 인정했다.
워커는 곧 백인제국의 확장을 위해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등 인근 국가들과 전쟁에 들어갔다. 하지만 해운·철도업계의 거부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와 맞서면서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밴더빌트가 지원하는 주변국 연합군에 패한 그는 권좌에 앉은 지 1년도 채 안 돼 니카라과에서 도망쳐야 했다. 중앙아프리카를 떠돌며 재기를 모색하던 그는 미 해군에 붙잡혀 온두라스 정부에 넘겨진 뒤 처형됐다.
사후에도 그는 미국 남부 주민들로부터 ‘워커 장군’이라 불리며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남북전쟁(1861∼1865)으로 그에게 ‘정권 약탈자’라는 역사적 평가가 내려지기 전까지.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