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재미만 생각한 건데… 특별한 비법은 없어요.”
침침한 조명아래 여러 개의 모니터, 다양한 편집기기, 비디오 게임기가 널려 있다. 의자와 장비를 빼면 한 사람이 서 있기도 좁은 공간이다. 서울 여의도 MBC 방송센터 편집실에서 만난 오윤환 PD는 늦은 밤인데도 한창 작업 중이었다.
그가 편집 중인 프로그램은 MBC ‘황금어장’의 간판코너 ‘무릎팍 도사’(수요일 오후 11시). 최근 화제를 낳고 있는 이 프로그램의 슬로건은 ‘최대한 솔직해 보자’. MC 강호동은 게스트들에게 기존 프로그램에서 묻지 못했던 민감한 질문을 던진다. 가수 이승환에게 채림과의 이혼에 대해 질문(2월 14일 방영)했고, 박진영에게는 외모 콤플렉스(3월 14일)를, 이승철에게는 대마초 전력과 표절 의혹(4월 4일)을 물었다.
시청자들은 이 프로그램의 또 다른 매력으로 차별화된 ‘편집’을 꼽는다. 오 PD가 자막을 최대한 활용하기 때문이다. 이전 프로그램들이 출연진의 말을 단순히 받아쓴 데 비해 ‘무릎팍 도사’ 자막은 1, 2, 3인칭 시점에서 자유자재로 상황을 설명한다. 자막이 적극적으로 진행에 개입해 ‘제3의 MC는 자막’이라는 유행어도 나왔다.
“최민수 편(1월 3일)을 녹음할 때였어요. 대화 중 적나라한 부분이 있어서 편집하자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러면 너무 밋밋해 보여 무언가 색다른 느낌을 주려고 이미지를 넣고 자막을 넣었죠. 지상파이기 때문에 발언 수위를 조절해야 하지만, 솔직한 답변을 자르면 프로그램 전체 콘셉트에 어긋나잖아요. 수위 조절이 필요한 장면에 경고등과 사이렌 소리를 삽입해 그 순간을 희화했죠. 솔직함은 남고 거부감은 줄어들었습니다.”
그는 자막과 함께 영화나 게임에서 차용해 온 각종 이미지를 넣는다. MC 강호동이 진행 중 엇길로 가면 ‘눈보라가 휘날리는 산’을 영상으로 보여 주며 ‘대화가 산으로 간다’는 자막을 넣는 식이다. 이런 방식은 시청자와의 ‘쌍방향 소통’을 내세우는 편집 기법이다. TV를 보는 시청자들이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이나 말하고 싶은 내용이 자막으로 나오기 때문에 출연진과 별개로 시청자와 프로그램 사이 교감이 일어난다.
“대학 시절 MT에서 찍은 사진으로 사진첩을 만들어 스토리를 구성했어요. 사진 등장인물마다 말 풍선을 그렸어요. 거기다 말을 붙이고 사진을 배열해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논리보다 감각이 중요해요. 타이밍을 어떻게 잡느냐, 어떤 포인트에 넣느냐, 캐릭터의 색깔에 어떻게 맞추느냐….”
그는 3시간 녹화분을 두고 이야기를 재구성하거나 재미없는 부분을 삭제해 40분 분량으로 만든 뒤 자막을 쓰고 방청객 시사를 통해 웃음을 더빙하는 편집 과정을 설명하며 “금요일 밤부터 오전 3시에 들어가고 일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잠을 거의 못 잔다”고 말했다.
“흐름이 자연스러워야 해요. 웃긴 장면 한 컷만으로는 계속 웃길 수 없어요. 편집 때문에 시청자가 무언가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받으면 실패한 겁니다. 인터넷에 올라가는 15초 영상이 아니라, 1시간짜리 방송이니 긴 호흡을 유지하면서 웃겨야 합니다. 이게 어려운 거죠.”
그는 “대본대로 찍는 드라마, 영화와 달리 즉흥성이 강한 오락 프로그램은 PD가 원하는 부분이 촬영 중 안 나올 수 있어 특유의 편집이 필요하다”며 “웃음을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새로운 실험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그는 화면으로 시선을 돌리며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