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계 뒤흔든 네덜란드 법원 판결
네덜란드 법원은 3일 미국에 있는 자회사 매각을 추진하는 ABN암로에 대해 “주주들의 동의 없이 자회사를 분리 매각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단순해 보이는 판결이다. 하지만 이 판결 하나가 국제 금융계에 일파만파로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금융계의 판도를 좌우하게 될 인수합병(M&A)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판결이기 때문이다.
ABN암로는 미국 자회사 ‘라살’을 미국의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매각하려 했다. 영국 바클레이스와의 M&A를 위한 선결 조건을 수행하기 위한 것. ABN암로 인수를 추진해 온 바클레이스는 라살 매각을 인수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바클레이스는 M&A를 통해 점점 대형화되고 있는 국제 금융계의 추세를 따라가기 위해 ABN암로를 인수하려 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계획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공룡 은행’의 탄생을 우려하던 경쟁사들은 이번 판결에 희색이 만연하다. 특히 ABN암로를 놓고 바클레이스와 치열한 인수전을 벌여 온 영국의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컨소시엄은 웃음을 감추지 않는다. RBS컨소시엄은 라살을 포함한 상태로 ABN암로 인수를 추진해 왔기 때문이다. 라살을 내세워 미국 내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다.
파문은 대서양 건너 미국에까지 번졌다. 이번 판결로 BOA도 낭패를 봤기 때문이다. BOA는 시카고에서 두 번째로 큰 은행인 라살을 인수해 시카고 내 영업을 확대할 계획이었다. BOA는 인수 무산에 따른 손해에 대해 ABN암로에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큰 파문을 불러일으킨 이번 판결의 배경에는 소액주주가 있다. 소액주주들은 모임을 갖고 대표를 내세워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 경영진이 인수 조건이 더 나쁜 바클레이스로 회사를 매각하려는 데 제동을 걸기 위해 행동에 나선 것.
바클레이스가 제시한 인수 가격은 670억 유로였고 RBS컨소시엄은 720억 유로를 제시했다. 게다가 바클레이스는 주식 맞교환을 제시한 반면 RBS컨소시엄은 일부 현금 지급을 약속했다.
소액주주 모임은 “믿을 수 없는 승리”라며 이번 판결을 반기는 한편 “ABN암로에 대한 인수 가능성은 이제 다시 열렸으며 더 많은 돈을 제시하는 자가 승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동근 파리특파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