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찍고 이제는 유럽연합(EU)으로.’
지난달 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타결 지은 한국이 7일부터 한-EU FTA 협상을 본격 시작한다. 이를 통해 미국-동아시아-EU를 잇는 FTA 허브(hub)가 된다는 구상이다.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6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역내 국내총생산(GDP)이 13억6000만 달러에 이르는 EU 시장을 확보하고 서비스 분야의 경쟁력을 높여 경제 선진화의 또 다른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1차 협상에서 기본 방향 확정
양측은 7∼11일 열리는 1차 협상에서 협상 추진일정 등 기본 방향을 확정하는 한편 상품이나 서비스·투자 등에서 실질적인 협상도 벌일 예정이다.
앞으로의 협상 일정은 다소 유동적이지만 일단 벨기에 브뤼셀에서 2차 협상(7월 16∼20일), 3차 협상(9월 17∼21일)을, 서울에서 4차 협상(날짜 미정)을 열기로 했다.
김한수 한국 측 협상 수석대표는 “연내 5, 6회의 협상을 벌여 가급적 1년 안에 타결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최대한 효율적으로 협상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한미 FTA 때 민감한 문제였던 투자자-국가 간 소송제(ISD)나 방송 등 문화 분야 개방이 이번 협상에서 빠지고 농산물 개방 부담도 상대적으로 덜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 따른 계산이다.
그러나 EU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이 느린 데다 양국이 ‘높은 수준’의 FTA를 추구해 중요한 쟁점이 적지 않기 때문에 타결까지는 1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제도 투명성도 논의에 포함
양측은 이날 ‘뉴 제너레이션(신세대) FTA’를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김현종 본부장은 “신세대 FTA는 지식재산권, 비관세 무역장벽을 철폐하는 등 양국 제도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세대가 상품 분야 관세 폐지에 주력했고 2세대가 서비스·투자 분야 개방으로 확대됐다면 신세대는 더욱 포괄적인 FTA인 셈이다.
이에 따라 EU는 자동차의 환경 안전기준 완화, 명품의 지식재산권 보호, 주름 개선 등 기능성 화장품 심사 및 승인 절차 완화 등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의 관세 장벽 폐지는 물론 전자폐기물 처리지침(WEEE) 등 환경 규제로 인한 교역장애 개선 등을 집중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비스 분야 협상 순탄치 않을 듯
양국은 높은 수준의 FTA를 맺겠다는 방침이어서 협상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비스 분야에서 한국은 EU에 영화 비디오 제작·배급, 음반 서비스 등 시청각 분야 서비스 개방을 요구할 예정. 그러나 피터 맨덜슨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EU는 시청각 분야의 시장 개방 확대를 제안하지도, 제공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또 EU는 한국에 뉴스 제공 서비스시장 개방을 요구할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은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의 이런 요구를 거부한 전례가 있다.
개성공단 제품의 원산지 인정 특례도 미국과의 협상 때처럼 갈등이 예상되는 분야다.
김한수 대표는 “한국과 FTA를 맺은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4개국과의 FTA에도 개성공단 문제가 반영됐다”고 기대감을 표시했지만 이그나시오 가르시아베르세로 EU 측 협상 수석대표는 “경제뿐 아니라 정치적 차원에서도 회원국들과 더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최근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 양측 통상대표 인터뷰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은 경제 시스템을 선진화하고 경제성장 동력을 확충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김현종(사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한-EU FTA 협상 출범 선언에서 “한-EU FTA는 한미 FTA와 함께 한국경제 도약을 위한 전기를 마련해 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 본부장은 “세계 무역의 50% 이상이 FTA 체결국 간에 이뤄지고 있어 개방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권인 EU와의 FTA 체결은 수출시장을 확보하는 것뿐 아니라 서비스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자료를 인용해 한국와 EU가 FTA를 체결하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2.20(16조)∼3.08%(24조 원) 늘어날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김 본부장은 “한-EU FTA 협상은 (한미 FTA와 같이) 시한이 없기 때문에 필요 이상 서두르지도 않겠다”면서도 “최대한 효율적으로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 영상·디스플레이 기기 등의 관세를 없애면 국내 기업들에 단기적인 혜택이 있을 수 있다”며 이들 분야의 관세 폐지를 우선 요구할 것임을 시사했다.
맨덜슨 EU통상집행위원
“지식재산권 등 비관세 장벽을 없애는 등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겠습니다.”
피터 맨덜슨(사진) 유럽연합(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한-EU FTA 협상 출범식에서 “비관세 장벽과 서비스·투자 분야 등에서 다자간 무역협상인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개발어젠다(DDA)에서 합의되기 힘든 부분을 보완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맨덜슨 집행위원은 EU에서 동아시아의 통상 교섭 책임자로 한-EU FTA 협상에서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의 협상 파트너 역할을 맡는다.
그는 이어 “전통적 (양자) 무역협정은 관세를 줄이는 것이 목적이지만 이제는 비관세 장벽, 기술적인 장애물들까지 봐야 한다”며 “규정이 없어 투자가 저해되는 부분과 투명하지 못한 규정들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맨덜슨 집행위원은 양측의 FTA 체결의 효과에 대해 “기업은 더 많은 비즈니스 기회가 생기고 투자가 자유로워지며 선택의 폭도 넓어질 것이며 소비자들도 더 저렴한 제품을 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교육·의료시장 개방을 요구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우선순위가 아니다”라고 답해 교육·의료 분야가 주요 쟁점이 되지 않을 것임을 내비쳤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 한미FTA 협상과 차이는
한국과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은 세계 거대 경제권과의 협상이라는 점에서 한미 FTA와 비슷하다. 그러나 협상의 성격과 방식, 대내(對內) 협상의 어려움 등에서 차이점도 적지 않다.
우선 EU가 단일 국가가 아닌 27개 나라의 연합체라는 점에서 대미 협상과는 매우 다르다.
EU는 회원국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지 않은 분야에 대해서는 협상하기 어려운 데다 국가마다 민감한 품목도 서로 다르다. 이 때문에 전체적인 개방 폭이나 협상속도가 한미 FTA 때보다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협상 방식의 차이도 크다.
한미 FTA에서는 미 의회로부터 행정부가 부여받은 무역촉진권한(TPA) 때문에 시한이 정해져 있었지만 한-EU 협상에서는 시한이 따로 없다.
또 서비스 협상에서 미국과는 명시된 분야를 제외하고 모두 개방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진행됐지만 EU와의 협상은 협상 대상을 일일이 명시하는 ‘포지티브 방식’으로 진행된다.
한미 FTA 협상 때 최대 쟁점 중 하나였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도 이번 협상에서는 논의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농산물 분야는 미국과의 협상에서는 가장 민감한 품목이었지만 이번에는 큰 충돌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EU도 곡물 수입량이 많아 농업에 상당히 민감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농축산물 개방, 반미 감정 등으로 대내 협상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한미 FTA와 달리 대국민 설득이 상대적으로 수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밖에 한국 협상단의 규모도 한미 FTA 때는 매번 200여 명에 이르렀지만 이번 협상에서는 50여 명 정도로 대폭 축소된 것도 큰 차이점이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