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희망이 싹트는 교실]신촌 세브란스병원 어린이병원학교

입력 | 2007-05-07 03:01:00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의 어린이병원학교에서 어린이 환자들이 자원봉사자와 함께 책을 읽고 있다. 홍진환 기자


《“야! 갈빡이와 대빡이다. 채연도 있다.” 3일 오후 4시 반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 은명대강당을 가득 메운 300여 명의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방 환호성을 질렀다. 현란한 비트박스와 텀블링 등 KBS ‘개그콘서트’팀 10여 명이 쏟아 내는 입담과 묘기에 강당은 금세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관객의 절반가량이 어린이병원에 입원한 어린이 환자들이었다. 소아암 환자 30여 명도 부모와 자리를 함께했다. 항암치료로 민둥산이 된 머리를 가리기 위해 두건을, 먼지와 세균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이들은 매일 학교로 등하교한다. 병원 안에 차려진 ‘어린이병원학교’에서는 병실과는 다른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 병원학교는 오랜 기간 입원한 학생들의 학습 공백을 메우고 정서적으로 안정을 되찾아서 학교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00년 개설됐다.

개그콘서트팀과 가수들은 2005년부터 매년 이들을 찾아온다. 병원 측은 어린이날 대잔치로 이날 행사를 꾸몄다. 사회사업팀 최권호 사회복지사는 “치료 때문에 공연장에 못 온 어린이들은 사인을 받아 달라고 부탁한다”며 “어린이들이 밝게 웃는 모습을 보니 정말 좋다”고 말했다.

병원학교의 10평 남짓한 교실 두 개에는 동화책이 가득 차 있다. 학생들은 언제든지 컴퓨터를 하거나 책을 읽고 놀 수 있다. 매일 시간대별로 음악치료 수학교실 미술치료 한자교실 등 24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아이들은 검진이나 진료가 없을 때 각자 알아서 좋아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친구를 사귀고 책을 읽는다.

골절 부위의 염증으로 입원한 김인수(11·서울 강서초등학교 6학년) 군은 “병실보다 병원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며 “책도 마음껏 읽고 친구도 사귈 수 있어 아침에 눈을 뜨면 병원학교에 가는 시간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하루 평균 30여 명, 매달 300여 명의 아이들이 병원학교를 찾는다. 개교 이후 병원학교를 거쳐 간 어린이는 모두 2500명 정도다.

이 학교는 지난해 서울 서부교육청과 협약을 맺었다. 초등학생은 하루 한 시간, 중고교생은 하루 두 시간 수업을 받으면 학교에 출석한 것으로 인정된다. 이 덕분에 아이들은 아프더라도 출석일수 미달로 인한 유급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들은 출석 인정 수업에서 국어 영어 수학을 중심으로 초등학교 교과서 및 기본공통교과목을 배운다. 대학원생과 은퇴한 교사 등 자원봉사자가 대부분 1 대 1 방식으로 수업을 맡아 진행한다.

세 살 때 백혈병에 걸려 투병 중인 박영훈(가명·7) 군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백혈구의 일종인 호중구 수치가 낮아져 다시 입원했다. 2주일에 한 번씩 혈액검사를 받는 등 5년 이상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언제 재발할지 몰라 노심초사하고 있다.

어머니 김정희(가명·34) 씨는 “기침이 심해 병원에 데려갔다가 백혈병에 걸린 사실을 알았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며 “병원학교에서 친구를 사귀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정상 생활로 복귀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고 말했다.

유일영 교장은 “몸이 아파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는 어린 환자를 보면 정말 안타깝다”면서 “병원학교는 이들의 학습 공백을 최소화하고 사회성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에 병원학교는 16곳뿐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올해 병원학교를 24개로 늘리고 후원금에 의지해 운영돼 온 병원학교에 학교당 1100만∼5800만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