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길이가 점점 장타자에게 유리하게 바뀌고 있어요. 저처럼 비거리를 내지 못하는 선수에게는 우승 기회가 없어지는 거죠"
지난해 두 차례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 정상에 섰던 김미현(30 KTF)은 경기가 끝난 뒤 가진 인터뷰에서조차 우승에 따른 기쁨이나 자신감보다는 걱정을 먼저 털어놓곤 했다.
위기의식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그러나 김미현은 "나는 이제 안돼"라며 포기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나름대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개혁을 선택했다.
김미현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자주 '변화'를 시도한다는 지적까지 받는 선수가 그다.
퍼팅이 신통치 않으면 서슴없이 퍼터를 바꾼다. 어떤 대회에서는 퍼터 5개를 사용한 적도 있다. 수요일(프로암), 목요일(1라운드), 금요일(2라운드), 토요일(3라운드), 일요일(4라운드)에 날마다 다른 퍼터를 들고 나온 것이다.
그리고 해마다 시즌 초반이면 "겨우내 스윙을 고쳤다"고 했다. LPGA 투어에 발을 디딘 1999년 두 차례 우승을 차지하면서 신인왕에 올랐지만 매년 겨울훈련 주제는 스윙 교정이었다.
어떤 때는 동계 훈련 동안 고친 스윙이 효과가 없으면 시즌 도중에 스윙을 바꾸는 일도 있었다.
정상급 선수라면 도저히 행동에 옮기기가 어려운 과감한 결정이다.
이런 김미현을 두고 '변화 강박증'이라고 꼬집은 이도 많았지만 150㎝를 간신히 넘기는 작은 체격과 짧은 비거리라는 약점을 지닌 김미현은 언제나 '변하지 않으면 살아 남지 못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지난해 한국 선수들이 수집한 11개 우승컵 가운데 두 개를 챙기며 최고의 성적을 올린 김미현은 지난 겨울에도 또 다시 '개혁'에 착수했다.
물론 계기는 점점 길어지기만 하는 코스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별 볼 일없는 선수로 추락한다는 절박감이었다.
주안점은 비거리 늘리기. 전담 코치 브라이언 모그는 "작은 체격 때문에 스윙 아크가 작은 김미현은 비거리를 늘리기 위해 존 댈리처럼 과도한 백스윙을 선택했는데 그건 잘못된 것"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백스윙을 줄여 정확한 타격 포인트를 찾고 빠른 다운스윙으로 비거리를 늘리자고 제안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김미현의 상징처럼 자리를 잡았고 벌써 일곱 차례 우승이나 일궈낸 정상급 선수의 스윙을 뜯어고치자는 엄청난 제안이었다.
더구나 김미현은 벌써 한국 나이로 서른 한살. 변화를 주기에는 너무 많은 나이였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김미현은 모그 코치의 제안을 주저없이 받아 들였다.
하루 두 시간 집중적인 레슨을 받았던 김미현은 시즌 초반 성적이 신통치 않아도 "5월쯤 되면 제 자리를 잡을 것"이라는 코치의 말을 믿었다.
지난 달 김미현은 "5월에는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통하게도 예언처럼 우승 소식을 전해왔다.
올해 셈그룹 챔피언십 이전까지 김미현의 평균 드라이브샷 비거리는 240.1야드로 122위에 불과하다. 지난해에는 241.7야드(141위)였다. 수치상 두드러진 변화는 없지만 전에는 김미현보다 멀리 치던 선수가 지난 달부터는 비슷해지거나 오히려 뒤처지기 시작했다고 김미현은 말했다.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변화를 끊임없이 모색하는 '개혁가' 김미현이 내년에는 어떤 변화를 시도할 지 벌써부터 관심을 끈다.
디지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