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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기자의 히트&런]‘14년 현대맨’ 이숭용의 존재 이유

입력 | 2007-05-08 03:02:00


영화 ‘친구’ 후반부의 한 장면. 상택이 면회를 와서 법정에서 범죄 사실을 순순히 시인한 준석에게 울먹이며 묻는다. “니 와 그랬노.” 준석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한다. “쪽팔리서….”

자존심은 의외의 결과물을 내놓는다.

올해 자존심에 가장 큰 상처를 입은 팀은 프로야구 현대. 재정난을 겪고 있는 구단은 언제 팔릴지 몰랐다. 헐값에 내놔도 사겠다는 곳이 없었다. 김재박 감독도 LG로 떠났다.

주장 이숭용(36)은 너무 분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개막 후 한 달 가까이 그의 입술 주위는 항상 부르터 있었다.

그가 가장 화가 났던 것은 “선수들을 다 팔아먹어 야구 할 선수가 없다. 김재박 감독까지 떠나 현대의 버팀목까지 사라졌다”는 말이었다.

태평양 시절을 포함해 현대에서만 14년째 뛰고 있는 이숭용은 ‘유니콘스’의 산증인. 청춘을 함께했던 팀이 이런 대접을 받으니 속이 무척 상할 만도 했다.

이숭용은 후배들에게 말 대신 몸으로 보여 주기로 했다.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스타킹을 유니폼 바깥으로 내서 입는 ‘농군(農軍) 패션’ 차림을 했다. 운동장에 가장 먼저 나왔고, 러닝과 스트레칭을 할 때도 가장 앞장섰다.

패배 의식에 사로잡힐 뻔했던 후배 선수들도 변하기 시작했다. 정성훈은 “고참이 저렇게 뛰는데 후배들이 어떻게 따라하지 않을 수 있겠나”라고 했다.

시즌 초반 하위권에서 맴돌던 현대는 분위기를 타며 7일 현재 13승 13패로 단독 4위를 달리고 있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성적이다.

이숭용 개인 역시 놀랄 만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작년까지 13시즌 동안 딱 2번(1997년, 2001년) 3할 타율을 냈던 그는 8개 구단을 통틀어 유일한 4할 타율(0.409)을 기록 중이고 최다안타(36개)도 1위다.

시즌 초반 프로야구가 치열한 순위 다툼 속에 인기몰이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현대의 선전이다. 이만하면 존재 가치가 충분하지 않은가.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