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카드 손병관 차장(왼쪽)이 장남 승욱 군과 새로 쓰기 시작한 용돈기입장을 놓고 용돈 사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경제교육 전문가들은 용돈기입장 작성이 신용교육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한다. 사진 제공 LG카드
‘4월 26일 용돈 받음 4000원, 4월 27일 용돈기입장 구입 500원, 4월 28일 슬러시 사먹음 1500원.’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글씨가 앙증맞다.
경기 안양시 민백초등학교 4학년 손승욱(10) 군은 지난달 26일부터 용돈기입장(사진)을 쓰기 시작했다.
LG카드 홍보팀 손병관 차장이 기자의 부탁을 받고 장남에게 용돈기입장을 써 보게 한 것이다.
청소년 경제교육 전문가들은 어렸을 적 신용교육의 기본으로 용돈기입장을 꼽는다. 이들이 용돈기입장 쓰기를 추천하는 이유를 들어 봤다.
○“써 보니까 재미있어요”
손 차장도 처음에는 “아이가 용돈기입장을 학교에서 내주는 일기쓰기 숙제처럼 지겨워할지 모르겠다”며 걱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열흘 정도 용돈기입장을 써 본 손 군의 반응은 의외였다.
“재미있어요. 아빠랑 날마다 돈을 어떻게 썼는지 얘기하는 것이 가장 좋아요.”
손 차장은 “용돈기입장 교육은 단순한 경제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책임 있는 인간으로 살아가도록 만드는 첫걸음”이라며 “아이와 지출 명세를 놓고 얘기하다 보면 부자간의 정(情)이 더 쌓이는 것 같다”며 만족해했다.
교육열이 높은 한국의 학부모들은 자녀 챙기기도 각별하다. 부모들이 먼저 ‘이것도 해봐라’ ‘이건 어떠니’ 하면서 장난감과 학습도구를 먼저 사 주는 사례가 많다. 심지어 친구 생일 선물까지 직접 골라 챙겨 주는 엄마들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스스로 돈을 잘 쓰는 습관을 길러 주는 것이야말로 부모들이 진짜로 챙겨 줘야 할 자녀 교육이라는 것이 교육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아이들이 말해도 안 듣는다면?
건전한 소비 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손 군은 “아직까지 한 번도 학교에서 ‘용돈을 어떻게 쓰라’고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천규승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교육협의회 사무국장은 “많은 학부모가 용돈을 주면서 ‘아껴 써라’ ‘용돈기입장을 써라’고 말한 뒤 금세 ‘우리 애들은 말을 해도 안 듣는다’며 지레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한 번 알려주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반복을 통해 ‘습관’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용돈기입장 작성을 통해 당장 특별한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예산 범위 안에서 합리적 배분을 통해 현명한 소비자가 되는 능력을 길러 주는 긴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천 국장은 또 아이들에게 용돈기입장과 함께 ‘지출 계획’을 쓰게 할 것을 권했다.
지출 계획은 여행을 갈 때 지도를 가져가는 것과 같다. 용돈기입장을 어느 정도 써 보면 일주일, 한 달 단위로 지출 계획을 스스로 짤 수 있다고 한다.
용돈기입장을 써 본 손 군은 “전에는 용돈 4000원 중에 1000원 정도가 남으면 대충 서랍에 넣어놓고 나중에 꺼내 쓰곤 했다”며 “그런데 이제 남은 돈은 통장에 저축해 휴대전화를 사고 싶다”고 했다.
손 차장은 “예전에는 아이가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사 달라’고 조르기만 했는데,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절약하려는 모습이 기특하다”고 말했다.
○아이들과 함께 가계부를 써라
용돈기입장 작성 교육이 실패하는 것은 부모가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천 국장은 “가계부를 작성할 때 자녀가 동참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경제교육”이라고 강조했다.
초등학교 5학년 정도면 엄마 아빠가 한 달에 얼마를 벌고 쓰며, 교육비로 얼마가 드는지를 얘기해 주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초등학교 때부터 자녀들과 가계부를 함께 써 온 천 국장은 “아이들이 엄마, 아빠가 얼마나 힘겹게 돈을 벌고 그중 교육비로 얼마나 많은 돈이 나가는지를 알면 ‘돈 벌기’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했다.
생일파티 등에 친구를 초대할 때도 미리 지출 계획과 예산을 아이들 스스로 세우게 하는 것도 좋은 경제교육이 된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