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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성 교수의 소비일기]씁쓸한 ‘광고의 유혹’

입력 | 2007-05-09 03:00:00


어느 날 옆의 동료가 한마디 건넸습니다.

“어, 이제 기미가 보이네!”

무슨 소리인가 싶어 거울을 보니 정말 왼쪽 눈 밑에 거무스름한 반점이 보입니다. 신경 안 쓰고 지내 왔는데 지적을 받은 뒤론 점점 더 눈에 들어옵니다.

‘자외선 차단제도 제대로 바르지 않았더니 결국 표시가 나는구나’ ‘나이야 속일 수 있나’ 등 온갖 상념이 떠올랐습니다.

늦었지만 뭔가 조치를 해야겠기에 큰맘 먹고 백화점에 갔습니다. 하얀 피부로 만들어 준다는 ‘미백 화장품’이 그렇게 많을 줄이야! 백화점 매장을 기웃거리며 몇 바퀴를 돌다가 ‘3일 만에 찾아오는 기적을 경험하라’는 광고 문구에 솔깃해졌습니다.

딱 부러지는 광고 문구에, 유명한 상표니 믿을 만하겠거니 생각했지요. 하지만 문구 뒤의 부연 설명, ‘한 달만 계속 바르면 확실히 달라진다’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사흘 만에 변화가 나타난다면서 한 달은 또 뭘까?

그렇게 사흘이 지났지만 기대했던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 달, 역시 큰 차이가 없습니다.

흥분하는 제게 옆의 동료는 또 말합니다. “광고가 다 그렇지? 그렇게 며칠 발라서 달라지면 세상 여자들 벌써 다 하얘졌겠다!”

상품이 넘쳐나는 ‘과잉생산’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업은 물건을 팔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팔기 위해서는 다른 상품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해야 하는데, 기술의 향상으로 제품 기능은 하나같이 좋아져 우수한 품질을 내세울 수도 없습니다. 결국 겉모양을 바꾼다든지, 광고를 달리하며 ‘심리적 차별화’를 시도합니다.

특히 광고를 통해 기업은 소비자의 욕구를 자극함으로써 사용하던 상품은 더 많이 소비하도록, 사용하지 않던 상품은 새로 사용하도록 끊임없이 소비자를 설득합니다. 이 설득 과정에서 과장과 기만, 그리고 오도는 너무나 쉽게 발견됩니다.

소비자는 이러한 광고의 속성을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때로는 너무나 안일하게, 때로는 지나치게 관대하게 받아들입니다. 내게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광고의 상품이 정말 내 욕구를 해결해 줄 수 있는지, 한 번 더 생각하고 판단하는 소비자의 의사결정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인터넷쇼핑몰에 게시된 이 화장품의 사용 후기에는 하나같이 “다들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한다” “바로 내가 찾던 상품이다”라며 매우 만족한다고 돼 있는데, 왜 제 얼굴은 아직도 그대로일까요?

서울대 생활과학대 소비자아동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