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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프랑스의 선택]‘영-불-독 친미 3두마차’ 뜬다

입력 | 2007-05-09 03:00:00


프랑스 대통령선거 결선투표가 치러진 6일 저녁. 니콜라 사르코지(52) 당선자의 지지자들이 대중운동연합(UMP) 당사가 있는 파리 샹젤리제 인근 라보에티 거리로 하나 둘씩 모여 들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행렬 위로는 파란색 풍선이 떠다녔고 깃발이 휘날렸다. 그 가운데 대형 깃발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프랑스 국기는 아니었다. ‘삼색기’이긴 했지만 청 백 적색의 프랑스 국기가 아니라 흑 황 적색의 벨기에 국기였다. 국기에는 ‘사르코지와 함께하는 벨기에 사람들’이라는 말이 프랑스어로 적혀 있었다.

브뤼셀에서 왔다는 조프루아 쿠만 씨는 “사르코지 후보의 당선을 함께 축하하기 위해 20명 정도가 왔다”고 말했다. 이번 프랑스 선거에 쏟아진 유럽의 관심을 보여 주는 듯했다.

‘남의 나라’인 프랑스 대선에 유럽인들이 지대한 관심을 보인 데는 이유가 있다. 선거 결과가 유럽 전체 정치 지형까지 뒤흔들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사르코지 당선자의 등장이 유럽연합(EU)의 미래에는 어떤 변수가 될지 어느 나라에나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유럽 이끌 ‘575 세대’=앙겔라 메르켈(52) 독일 총리가 집권하기 전까지 유럽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삼두체제가 좌우했다. 시라크 대통령, 슈뢰더 총리가 반미(反美)라는 공통분모로 뭉치고 친미파인 블레어 총리와는 다소 대립각을 세우는 형국이었다.

사르코지 당선자에 이어 7월경 고든 브라운(56) 재무장관이 영국의 차기 총리에 오르면 메르켈 총리와 더불어 ‘신(新)삼두체제’가 형성된다.

세 사람은 모두 1950년대에 태어난 50대로 1970년대에 대학생이었던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국식 작명법으로 부르면 ‘575세대’(50대·70년대 학번, 50년대 출생)인 이들은 예전의 트로이카보다는 매끄럽게 융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대미 관계에 있어서 세 사람의 성향이 비슷하다. 메르켈 총리와 사르코지 당선자는 공공연하게 친미 성향을 드러내 왔다. 브라운 장관 역시 친미 전통을 이을 것으로 예상돼 전임자들처럼 미국 때문에 유럽의 주요 3국이 분열되진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싱크탱크 유럽개혁센터의 찰스 그랜트 씨는 “일단은 메르켈과 사르코지가 ‘듀오’를 형성할 것이며 브라운이 적극적으로 삼두체제에 참여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내다봤다. 유로화를 쓰지 않는 영국은 여러 면에서 대륙 국가들과 이해가 달라 친미 성향이라는 공통점 하나만으로 곧바로 의기 투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영국의 이른바 ‘신(New)노동당’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앤서니 기든스 교수는 브라운 장관이 유럽을 이끄는 리더십에 적극 동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럽의 미래는 어디로=EU집행위원회를 비롯해 유럽의 가장 큰 관심은 무엇보다 프랑스의 정권 교체가 유럽 헌법 부활에 미칠 영향에 쏠린다.

주제 마누엘 바로수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6일 사르코지 당선자에게 축하를 전하면서 “그가 교착 상태에 놓인 EU 헌법을 부활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말을 앞세웠다. EU헌법 부활에 적극적이지 않은 사르코지 당선자에게 은근히 부담을 지우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유럽헌법 부활을 주장해 온 메르켈 총리도 성향이 비슷한 사르코지 당선자를 크게 환영했다. 메르켈 총리는 “EU의 핵심 주축으로서 두 나라의 긴밀한 협력 관계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EU 의장국으로서 헌법 부활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메르켈 총리 역시 사르코지 당선자의 협력을 기대한다는 속뜻을 내비친 것.

반면 EU의 외연을 확장하는 문제는 교착 상태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사르코지 당선자가 터키의 EU 가입에 강하게 반대하기 때문이다. 내년 하반기에는 프랑스가 새 대통령 체제에서 EU 의장국이 되기 때문에 EU의 장래에 더욱 큰 입김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