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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진녕]노무현과 김대중의 氣싸움

입력 | 2007-05-09 19:34:00


노무현 대통령과 현 정권을 떠받치는 두 기둥이던 정동영 김근태 씨의 관계가 갈 데까지 간 것 같다. 나중에 큰길에서 다시 만나기 위한 ‘치고 빠지기’식의 작전인지는 몰라도 지금 서로가 주고받는 말투로 보면 그런 느낌이다.

열린우리당 안팎의 탈노(脫盧) 세력이 노 대통령의 품을 벗어난다면 어디로 갈까. 피차 모래알 같은 존재들이지만 어떻게든 통합 세력을 만들어 한나라당에 대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자니 또 하나의 구심점이 필요하다.

김근태 씨는 지난달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내가 살아 있는 호남정신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했다. 또 “지난해 북한 핵 위기 때 정치권 밖에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있었다면 정치권에는 김근태가 있었다”고도 했다. 정동영, 천정배 씨 같은 호남 기반의 인사는 말할 것도 없고 비호남권 인사들의 DJ를 향한 구애(求愛)도 절절하다. 손학규 씨까지 햇볕정책 계승을 외치며 ‘DJ 코드’로 전환 중이다. 그들이 찾는 구심점이 바로 DJ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노 대통령을 떠나 DJ에게 다가가려는 이유는 뻔하다. 올해 대선은 물론이고 내년 총선에서도 정치적 위상을 잃지 않으려면 인기도, 변변한 지지 기반도 없는 노 대통령보다는 든든한 지역 기반을 가진 DJ가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10여 일 전 CBS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대선 판도에 미칠 영향력에서 DJ(45.4%)가 노 대통령(30.3%)보다 훨씬 높게 나왔다. 정치인들이 돌아가는 상황을 모를 리 없다.

노 대통령이 요 며칠 사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직접 쓴 ‘정치, 이렇게 가선 안 됩니다’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이란 두 편의 글 속에는 분노가 담겨 있다. 핵심 주장은 대략 세 가지로 압축된다. 지역주의에 기대지 말라, 정당 중심의 정치를 하라, 열린우리당을 흔들지 말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당을 깨고 만들고, 지역을 가르고, 야합하고, 보따리를 싸들고 이 당 저 당을 옮겨 다니던 구태정치를 답습하려는 당신들’에게 한 말이다. 그러나 진짜로는 DJ에게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DJ는 평생 호남을 기반으로 정치를 했고, 대통령까지 됐다. 그는 필요에 따라 당을 깨기도, 만들기도 했다. DJ가 곧 당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금 그는 범여권 통합에 적극적이다. 지난해 “여당 비극의 씨앗은 민주당과의 분당에 있다”고 하더니 얼마 전엔 “국민이 바라는 것은 양당제도”라며 “지금 당장의 단일 정당은 어려울 수 있으니 단일 후보 선출에 노력하는 게 좋다”고 했다. 통합의 필요성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한 것이다. 우파에 정권을 넘기지 않는 것이 최대의 목표다.

열린우리당 해체를 주장하는 인사들의 목소리도 이와 비슷하다. 정대철 열린우리당 고문은 최근 한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DJ의 비서실장인 박지원 씨에게서 “통합은 DJ의 뜻”이라는 메시지를 전달받았다고 했다. 열린우리당 해체와 범여권 통합에 DJ가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노 대통령이 의심할 만도 하다.

정치권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과 DJ의 기 싸움이 시작됐다”고 본다. 여기에 친노(親盧), 탈노 세력이 격돌하니 그 소리가 요란하다. 인질로 잡힌 국민은 귀를 막을 수도 없다. 이들에게 국민은 어떤 존재인가.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