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최근 기초의원과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정당 공천을 배제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특히 지난달 지방 보궐선거에서 공천을 둘러싼 금품수수 잡음이 불거지면서 정당공천 배제 여부와 관련한 논란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선거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서 정당 공천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과 정당의 책임정치 구현을 위해 정당공천이 불가피하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양쪽의 주장을 소개한다.》
▼찬 - 선거비리 근절 위해 폐지 마땅▼
2006년 5·31 지방선거 이후 불과 1년 만에 4·25 재·보선을 치러 국가예산을 허망하게 낭비했다. 공천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 2006년 3월 말부터 각 정당뿐 아니라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는 금품 거래 의혹을 제기하는 제보와 투서가 공천 탈락자들에게서 잇따라 날아들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기초의원급도 최소 1억 원 이상을 내야 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와 같이 공천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게 된 것은 2005년의 공직선거법 제47조 개정에 의해 기초의원까지 공천이 허용되면서부터다. 당비 대납, 당 후원금은 이미 공식화됐다. ‘공천은 곧 당선’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면서 알게 모르게 성사되고 있는 공천 헌금 액수는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작태까지 나타나게 됐다.
국회의원후보자-단체장 후보자-광역의원 후보자-기초의원 후보자 간의 담합이 강화돼 비리의 순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주민과 밀접해야 할 기초지방정부의 자치가 손상되고, 유권자보다 국회의원에게 잘 보여야 공천을 받고 당선될 수 있다는 등식이 성립됐다. 이것이 한국 지방자치의 서글픈 현실이다. 지방선거과정에서의 각종 부조리와 비리가 적발되면 그 책임은 개인에게 돌아간다. 공천권을 행사했던 중앙 정당들은 발뺌만 하는 것이 정치권의 행태다. ‘책임 있는 정당정치를 하겠다’고 기초지방의원까지 공천제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했던 정당이라면, 4·25 재·보궐선거에서는 후보자를 내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지난 재·보궐선거에서는 단체장 선거 6곳 가운데 5곳에서 무소속 후보자가 선출되는 유권자 혁명이 나타났다. 혹자는 이런 결과를 보고 ‘정당 공천을 하더라도 유권자가 잘 판단할 것’이라고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광역단체장, 광역의원, 기초단체장, 기초의원을 동시에 선출하는 경우 유권자는 후보자 및 정책을 검증할 기회를 잃어버려 정당 중심의 투표를 할 수밖에 없다. 특히 지방의원 선거의 경우 투표장을 빠져나오면 기호만 기억나지 자신이 투표한 후보자의 이름조차도 기억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정당정치의 횡포로 인해 지방자치가 말살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법무부에서 제안한 것과 같이 공직선거법 재개정을 통해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의 정당공천을 배제해야 한다. 역대 지방선거에서의 평균 투표율은 40%를 기록하고 있으며, 5·31 지방선거 직전인 4월 28일 어느 언론 보도에 의하면 정당을 지지하는 않는 층이 60%에 이른다고 한다. 따라서 다수의 선출자 및 후보자들을 선거 사범으로 만들며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현행 공직선거법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기초자치단체장 및 기초의원의 경우 정당 공천제가 아닌 후보자가 지지정당을 표방하게 하거나 정당의 전면 개입을 금지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방자치가 발달된 미국에서도 기초지방선거에는 정당의 관여를 금지하는 곳이 전체의 80% 이상이다. 일본의 경우 기초지방선거에서 90% 이상의 무소속 후보가 선출되고 있다. 지방자치는 정당민주주의에 의해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주민의 주체의식과 자율적인 권리 행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경실련 지방자치위원장
▼반 - 정당 참여 없이 지방자치 불가능▼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정당공천을 배제하자는 의견에는 논리가 부족하다. 무엇보다 광역단체장과 광역의원 공천은 되고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공천은 안 된다는 구별의 근거를 묻고 싶다.
정당공천을 배제하자는 가장 큰 이유는 비리 문제이다. 특히 특정 지역에서 ‘정당공천이 곧 승리’라는 등식이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정당공천 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투명하게 만들면 될 일이지 정당을 배제하는 것이 해결 방안은 아니다.
그리고 제거 대상은 지역주의이지 정당의 선거 참여가 아니다. 관료가 부패에 연루되면 징계하는 게 답이다. 전체 관료를 업무에서 배제해 부패를 예방하는 것이 해결방안이 아니다.
정당공천 배제 주장은 지방정치의 중앙정치 예속화 문제를 강조한다. 하지만 정당이 없으면 재정이 부족한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돼 지방자치 실현의 근본적 취지인 자주성과 다양성을 잃기 쉽다.
지방자치의 또 다른 중요한 의의는 제한된 자원 배분과정에 주민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다. 지방정부의 정책결정 및 행정처리에는 우선시되는 것이 있다. 효율과 형평 사이에서 더 강조되는 것도 있다. 이러한 차이를 유권자는 정당을 통해 인지하고 정치적 선택을 통해 의사를 표명한다. 지방정부를 단순히 중앙정부 지시의 집행자로 보는 것은 지방자치단체가 가진 의결권과 자치입법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다.
많은 학자가 미국과 일본의 예를 들면서 정당공천 배제를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의 기초단체는 미국과 일본의 기초단체에 비해 인구규모 측면에서 매우 큰 편이라 비교가 어렵다. 또 미국과 일본도 정당공천을 안 하고 있는 것이지 금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방자치의 깊은 뿌리를 가진 영국은 정당공천을 하고 있다.
정당 중심이 아닌 인물 중심의 선거를 위해 정당공천을 배제하자고도 한다. 하지만 과거 정당공천을 하기 전 기초의원선거에서 유권자는 인물보다 후보자의 기호를 보고 투표하는 경향을 보였다. 유권자에게 후보자의 소속정당을 알려주는 것은 기본적 정보의 제공이다. 미국에서 판사, 보안관, 회계감사관과 같이 주민에 의해 선출되는 공무원에 대해 정당 표방을 허용하고 있는 것은 최소한의 정보를 유권자에게 제공하기 위한 배려다.
정당의 활동은 헌법이 보장해 주고 있다. 정당은 이를 바탕으로 책임정치를 구현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정치인 및 관료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따라서 정당이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당의 참여는 자치입법 활동, 집행부 견제 활동에 필요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기초의회의 활동을 제고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문제의 근원은 지역주의 그리고 정당공천 과정에서의 잡음이지 정당의 선거참여 여부가 아니다.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정당을 선거에서 제외하자는 것은 참신한 후보 발굴 및 검증, 유권자를 위한 최소한의 정보 제공, 주민의견 취합 및 표출, 토호세력의 지방정부 장악 예방 등의 순기능을 모두 외면하는 주장이다.
가상준 단국대 정치외교학과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