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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2002년 ‘러 스파이’ FBI요원 핸슨 종신형

입력 | 2007-05-10 03:01:00


누구도 그를 스파이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6명의 자녀를 둔 가장이었고 매일 성당에 다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이웃들이 증언했듯이 모범적인 시민이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도 방첩(防諜) 활동의 최전선에 있는 충실한 요원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FBI 요원 로버트 핸슨의 이중생활은 2001년 2월 18일로 끝났다. 러시아의 비밀요원에게 건넬 정보를 비밀 장소에 숨겨 두고 오는 길. 그를 검거한 것은 FBI의 동료들이었다. 무려 20여 년간 핸슨에게 농락당했으니 FBI도 잔뜩 독기가 오른 상태였다.

핸슨 사건은 미국 정보기관 역사상 최악의 재앙으로 불린다.

그의 이중생활은 조사를 통해 낱낱이 드러났다. FBI 요원이 된 1976년부터 검거될 때까지 옛 소련과 러시아의 비밀요원에게 넘긴 정보는 상상을 초월한다. 대(對)간첩 작전 정보는 물론 군사기밀도 있었다. 핵전쟁에 대비한 미국의 전략까지 넘겨줬다.

그는 ‘라몬 가르시아’라는 가명을 썼다. 그리고 정보를 넘겨주는 대가로 140만 달러의 현금과 다이아몬드를 받았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은 발칵 뒤집혔다.

비난의 화살은 FBI로 쏠렸다. 간첩을 핵심 부서의 요원으로 데리고 있었으니 비난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FBI는 소속 요원 수백 명을 대상으로 거짓말 탐지기 조사까지 벌여야 했다. 20여 년간 속았으니 누굴 믿을 수 있겠는가.

핸슨 사건 직후 미국은 러시아 외교관 수십 명을 스파이 혐의로 추방했다. 러시아도 즉각 대응해 미국 외교관을 잇달아 쫓아냈다. 미-러 관계는 냉전시대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듬해 5월 10일 핸슨은 종신형을 선고받고 철창에 갇혔다. 조국을 배신한 대가였다.

2003년 8월 핸슨 사건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보고서가 나왔다. 미 법무부 감찰실이 36만8000쪽에 이르는 수사 자료를 분석하고 핸슨의 주변 인물 200여 명을 인터뷰해 내놓은 보고서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핸슨이 발각되지 않은 것은 유달리 영리하거나 솜씨가 좋아서가 아니었다. 원인은 FBI의 대간첩 프로그램에 있었다. FBI의 보안프로그램에도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

적(敵)은 항상 내부에 있다고 했던가.

차지완 기자 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