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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하종대]다시 꿈틀대는 중화제일주의

입력 | 2007-05-10 03:01:00


5일 주말을 이용해 허난(河南) 성 정저우(鄭州) 시가 최근 세운 ‘염황 2제(炎黃二帝)’ 조각상을 찾았다. 높이 106m의 조각상은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몇 km 떨어진 곳에서 보아도 모습이 웅장하다.

만드는 데 들어간 화강암만 6000m³다. 강재 1500t과 7000m³의 콘크리트도 함께 들어갔다. 1∼3t씩 나가는 바위는 1500km 떨어진 푸젠(福建) 성의 진장(晋江) 시에서 가져왔다. 20년간 1억8000만 위안(약 216억 원)의 막대한 돈이 투입됐다.

중국 일부 언론은 이를 ‘세계 최고의 조각상’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1995년 일본이 세운 ‘우시쿠(牛久) 대불’은 높이가 120m다.

지난달 30일 장쑤(江蘇) 성 창저우(常州) 시 ‘톈닝(天寧)선사(禪寺)’에서는 ‘톈닝보탑(寶塔)’ 낙성식이 열렸다. 탑의 높이가 153.79m로 중국 내 최고다. 톈닝선사는 중국의 최전성기인 당 태종 때 건립된 사찰로 ‘동남 제1총림’으로 불릴 만큼 완결미를 자랑하는 천년 고찰이다.

허난 성 신정(新鄭) 시는 2005년 5월부터 스쭈(始祖) 산 능선을 따라 세계 최장의 용 조형물을 조성하다 올 3월 뒤늦게 환경론자의 반발에 부닥쳐 중도에 포기했다. ‘화샤(華夏·중국을 지칭) 제1 쭈룽(祖龍)’으로 명명된 용의 길이는 무려 21km다.

올해 잇따른 초대형 기념물의 등장은 최근 중국의 ‘중화제일주의’가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고 있음을 시사한다. 중화제일주의란 ‘중국 것이 천하 최고’라는 중국인의 의식을 일컫는다.

이는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다. 중국 황제가 거처하던 베이징(北京)의 고궁은 ‘천자(天子)’가 거처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쯔진청(紫禁城)’이라고 불렸다. 동서 485m, 남북 515m, 높이 76m의 진시황릉은 개인 무덤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모두 중화제일주의의 발현이다.

문제는 중국이 이에 집착한 나머지 사실까지 왜곡하려 한다는 점이다. 중국의 역사는 줄곧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따라 기원전 841년 주나라 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여겨 왔다. 그러나 중국은 1996년부터 5년간 ‘하상주(夏商周) 단대(斷代·시대구분)공정’을 통해 역사시대를 기원전 2070년까지 1200년 이상 끌어올렸다. 2000년부터는 ‘중국 고대문명 탐원공정’을 추진해 ‘삼황오제(三皇五帝)’ 전설을 5000년 역사로 바꾸고 있다.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것도 이런 과정의 일환이다. 몇 명이 백두산에 관광 가서 ‘이곳은 우리 땅’이라고 외쳤다고 하는 게 아니다. 최근엔 중국과 주변 국가의 고대 왕조가 주종(主從) 형식의 ‘판수(藩屬·번속) 관계’였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한(漢)족 중심의 중화제일주의를 고집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중국의 왕조 중 한족이 세운 나라는 진(秦), 한(漢), 수(隋), 당(唐), 북송(北宋), 명(明) 등 손에 꼽힐 정도다. 나머지는 이민족이 세운 나라다. 영토가 가장 넓었던 원(元)과 청(淸)은 각각 몽골족과 만주족이 세웠다.

중국 란저우(蘭州)대 셰샤오둥(謝小東) 교수 연구에 따르면 중국인의 92%를 차지하는 한족은 실제로 한 민족이 아니며 순수한 한족 혈통은 없다고 한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중국은 56개 민족을 한꺼번에 아우르는 중화민족(中華民族)이라는 특이한 민족 개념을 사용한다.

청 왕조는 100여 년 전 서방의 선진문물이 물밀듯이 밀려오는데도 “중국 것이 최고다”라며 ‘중체서용(中體西用)’을 고집하다 결국 멸망했다. 중국이 진정으로 세계 최고가 되려면 겸허함과 주변 국가와 공존하겠다는 생각부터 확고하게 다져야 한다.

하종대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