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고 어두운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극장 로비와 달리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등 클래식 공연장의 로비는 화려한 사교장의 역할을 한다. 사진 제공 유경숙 씨
《미국 뉴욕에서 공연장을 전전한 지 한 달째. 브로드웨이 박스 오피스맨들이 매일 같은 차림으로 나타나는 이 아시아 ‘소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더 보고자 하루 종일 여기저기 돌아다니려다 보니 면 티셔츠와 청바지, 그리고 운동화가 내 ‘여행복’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뉴욕.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배경이 됐던 바로 그곳. 뉴욕에서의 마지막 밤. 오늘만큼은 나도 그들처럼 …하고 싶었다. 뭐냐고? 하늘하늘 멋진 파티복 입고 높고 넓은 계단 올라가는 거. 화려한 로비에서 드레스 차림으로 우아하게 와인 한잔 마시는 거. 그동안 공연을 보느라 바빴지만 공연 기획자로서 이들의 공연장 문화도 한번쯤 엿보고 싶었다.》
어제도… 오늘도 클래식공연장은 ‘오프닝 나이트’
○비좁고 허름한 뮤지컬 극장… 관객 옷차림도 소박
뉴욕의 공연장 분위기는 두 종류로 뚜렷이 갈린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극장들은 관광객에게 매출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관객들의 멋스러운 차림새나 독특한 인테리어의 로비, 혹은 객석의 분위기 등은 사실 기대하기 어렵다. 비싼 땅값 탓인지 로비 공간은 매우 좁고 심지어 로비 자체가 없는 공연장이 훨씬 더 많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이 공연장에 도착하는 시간도 대체로 늦다.
일찍 와도 서 있을 공간이 없으니까. 인터미션(중간휴식) 때도 로비가 좁다 보니 갈 곳이 없어 그냥 객석에서 선 채로 왁자지껄 떠드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옷차림도 다들 너무나 간소하고 편해 보였다.
좁지만 그나마 고급스럽고 클래식한 인테리어를 한 공연장으로는 뮤지컬 ‘해적 여왕(The Pirate Queen)’을 공연하는 뉴 빅토리 극장과 ‘메리 포핀스’를 공연하고 있는 뉴 암스테르담 극장 정도. ‘레미제라블’을 공연하는 공연장은 로비가 허름하기 짝이 없고, 공연 후 나오는 출구는 할렘보다 어둡고 칙칙하다.
뮤지컬 ‘컬러 퍼플’ 공연장은 흑인 노예의 삶을 다뤄서인지 유난히 흑인 관객이 많았는데 그래서인지 어두운 실내는 더욱 어둡게만 보였다.
내가 기획자였다면 로비를 더 밝고 화사하게 했을 텐데. 감동에 찬 흑인 관객들의 해맑은 얼굴이 더 잘 보이도록 말이다. 작품이 좋아 로비에서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지만 사진이 제대로 안 나올 만큼 공연장은 칙칙했다.
그럼 정통 클래식의 대공연장들은 어떨까. 클래식 공연장들은 ‘파티’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다. 한마디로 고급 사교장 같다. 뉴욕의 유명한 클래식 공연장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나 오페라단의 잇따른 공연으로 거의 매일 오프닝 나이트(Opening Night)였다. 클래식 공연장 관객들은 일찌감치 공연장에 와서 공연장 내의 레스토랑이나 로비에서 여유롭게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고급 사교장 같은 클래식 공연장… 멋쟁이 뉴요커의 데이트 명소
세계적인 오페라가 공연되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나 뉴욕필이 상주하는 링컨센터 에이버리 피셔홀, 뉴욕스테이트발레시어터, 최고의 공연들만 엄선하여 선보이는 카네기홀 등의 정통 공연장들은 어찌 저리 과감할까 싶을 정도로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등 부분이 허리까지 파인 드레스를 입은 여성부터 단정한 세미 정장까지 제대로 차려입은 사람이 많았다. 청바지를 입은 관객은 보이지 않았다.
남자 관객은 대부분 정장 차림이었다. 대체로 어두운 갈색 또는 흑색이었고 넥타이 색도 그다지 밝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하얀 와이셔츠가 더욱 깨끗하고 단정해 보였다. 나비넥타이를 맨 신사 관객들의 손에는 항상 와인잔이 들려 있다.
클래식 공연을 즐긴다는 한 관객은 “좋은 공연을 볼 때 잘 갖춰 입고 오면 기분까지 좋아진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에 대한 예의다”며 “여행자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최소한 청바지와 운동화는 피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하지만 정통 클래식 공연장이라고 해서 모두 멋진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고 오는 것은 아니다. 다소 새침해 보이는 뉴욕의 할머니 관객들이 큰 액세서리에 빨간 립스틱으로 멋을 내고 공연장에 오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보였다.
공연장에 예쁘게 차려입고 오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었다. 반드시 혼자가 아닌 커플이라는 점이다. 공연 관계자라면 잊지 말아야 할 키워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공연장에 갈 때 더욱 특별하게 차려입는 이유는 단순히 예술적 공간에 대한 예의라기보다는 파트너와의 즐거운 데이트 장소이기 때문이 아닐까. 여성 관객이 압도적으로 많은 한국의 공연장도 이렇게 잘 차려입은 커플 관객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유경숙 공연기획자 prniki1220@hotmail.com
▼ Free! Free! Free!▼
매년 여름 최고수준 무료공연 쏟아져
뉴욕에서 여름에 가장 많이 보이는 단어는 ‘Free(공짜)! Free! Free!’다. ‘Free Concert for You!’ 매년 여름, 센트럴파크, 브라이언파크 등 뉴욕의 명소에서 펼쳐지는 무료 야외 특설무대만 챙겨 봐도 몇 달치 방값은 가뿐히 빠질 것 같다.
뉴욕시와 주, 각 예술기관이 주민과 뉴욕을 찾는 여행객들을 위해 매년 여름 펼치는 무료 공연이 아주 많고 다채롭다. 무료니까 공연의 질이 의심된다고? 걱정은 금물이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뉴욕시립 오케스트라, 링컨센터 등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예술단체들이 문화 활성화를 위해 선보이고 있는 일종의 주민을 위한 선물이다. 올여름 휴가에 맞춰 미국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뉴욕 도착 즉시 신문이나 잡지 등 아무 매체나 펼쳐 보면 수많은 무료공연 축제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최고의 공연을 공짜로 즐기기 위해서는 기다림의 과정은 필수다. 인기 공연일수록 줄 서기는 필수. ‘즐거운 기다림’을 위해 알아두면 좋을 내용 몇 가지.
① 오전부터 서둘러라=주로 오후 2시 이후 관람권을 나눠 주는 경우가 많다. 센트럴파크, 브라이언파크 등 뉴욕의 최고 명소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제대로 보려면 오전 8∼10시에 가서 좋은 좌석을 찜하자.
② 간이의자나 담요를 챙겨 가자=기왕 기다릴 거 잔디밭에서 여유를 즐겨 보자. 양초를 가져가면 저녁에는 분위기도 낼 수 있다.
③ 음식 걱정 하지 마라=워낙 무료 공연이 많다 보니 줄을 선 사람을 위해 배달 서비스도 준비돼 있다. 전화 한 통이면 음식을 배달시켜 먹을 수 있다. 가장 많이 눈에 띄었던 번호는 212-799-3355.
④ 대표로 줄 서기는 안 된다=최고의 공연을 무료로 즐기는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한 명이 대표로 줄을 서고 나중에 우르르 몰려갔다가는 다시 긴 줄의 맨 끝으로 가야 할 수도 있다. 공연을 보려는 그룹은 다같이 줄을 서야 한다.
⑤ 풍선을 가져가라=수많은 인파 속에서 일행을 찾기는 쉽지 않다. 알록달록한 풍선을 가져가면 눈에 잘 띈다.
⑥ 모기약을 준비하자=여름밤 축제엔 불청객 모기도 함께 관람한다. 뿌리는 모기약은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