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엔진과 머플러를 연결해 주는 벨로스. 자동차의 성능과 안전 못지않게 승차감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벨로스가 핵심 부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세계 자동차용 벨로스 시장의 25%를 차지하풱는 SJM의 기술 경쟁력은 자체 기술연구소에서 나온다. SJM 연구소의 한 연구원이 벨로스 제품을 시험하고 있다. 안산=김창원 기자
《‘역사가 100년이 넘는 기업도 무섭지 않다.’
직원 360명으로 세계 자동차 부품 시장을 호령하는 기업이 있다.
자동차 부품 하면 으레 자동차 종주국 ‘독일’을 떠올리지만 이 같은 상식을 깨 버렸다.
중소기업이 세계 곳곳의 쟁쟁한 글로벌 기업과 싸워 이길 수 있었던 방법은 30년 넘게 한 우물만을 파 온 ‘선택과 집중’이었다.》
○ 자동차 부품은 우리가 넘버원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에 위치한 SJM은 자동차 배기관에 들어가는 ‘벨로스(bellows)’ 전문 생산업체다.
‘주름 잡힌 모양의 관’이란 뜻의 벨로스는 자동차의 엔진과 머플러를 연결하는 ‘자동차용 관절’이다. 배기가스의 유출을 막는 것은 물론 엔진에서 발생하는 심한 진동과 소음을 흡수해야 하기 때문에 승차감을 좌우하는 주요 부품이다.
최근 자동차의 안전과 성능 못지않게 승차감이 강조되면서 핵심 부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SJM의 자동차용 벨로스의 장점은 경쟁 제품에 비해 무게는 20% 줄인 반면 충격과 소음 흡수력은 20% 향상시켰다는 점이다.
반면 금속 가공 및 조립에 쓰이는 자동화 설비를 100% 자체 제작해 가격은 경쟁사에 비해 5∼10% 저렴하다.
이 때문에 SJM은 세계 자동차 벨로스 시장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넘버원 기업이다.
지난해 1000만 개를 생산해 매출 822억 원을 올렸으며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435억 원을 수출했다.
김용호 SJM 회장은 “주요 경쟁사인 독일의 비첸만, 미국의 시니어플렉소닉 등 100년 넘은 전통 기업도 우리가 생산하는 제품을 따라오지 못한다”면서 “2010년까지 연간 생산량을 1500만 개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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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천기술로 각종 응용제품 쏟아내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쓰는 벨로스는 100% 일본에서 수입했다.
당시 냉난방 설비업체에 근무하던 김 회장이 벨로스의 가능성에 눈을 뜬 것은 이 무렵부터다. 볼트나 너트처럼 거의 모든 기계설비에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가는 제품이어서 국산화에 성공만 하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제품이었다.
벨로스는 원통 모양으로 만든 얇은 철판에 압력을 가해 용수철처럼 주름을 잡는 금속성형 기술이 관건이어서 기술력만 확보하면 적은 자본으로도 창업할 수 있는 획기적 아이템이었다.
김 회장은 낮에는 직장생활, 밤에는 금속가공 원서와 씨름하며 금속성형 기술을 바닥부터 익히기 시작했다. 이에 앞서 1970년대 초반 정부 산하 연구소도 벨로스 국산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한 직후였다.
그는 새로운 방식의 금속가공 기술을 적용해 주경야독 1년 만에 독자적인 벨로스 생산 기술을 터득했고 1975년 제조업 벤처에 뛰어들었다.
SJM이 창업 초기에 생산한 제품은 냉난방 배관 설비에 들어가는 건축용 벨로스였다. 하지만 건축용 벨로스는 범용 제품인 데다 외국 경쟁사와의 경쟁이 치열해져 수익성이 떨어졌다.
SJM은 1985년 자동차용 벨로스로 눈을 돌렸고 1990년 미국 포드사에 첫 수출을 하면서 세계시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나 세계 자동차 업체들의 주문이 줄을 이었다.
SJM은 현재 현대자동차 등 국내 자동차사는 물론 GM,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폴크스바겐, 푸조, 도요타 등 전 세계 자동차 메이커에 납품하고 있다.
올해 2월에는 GM과 포드에 각각 882억 원과 215억 원에 이르는 벨로스 추가 공급 계약을 같은 날 동시에 맺어 화제를 낳기도 했다.
SJM은 최근 주력 제품인 자동차용 벨로스에 이어 신규 아이템으로 ‘선박용 벨로스’ 생산에도 눈을 떴다. 2005년 하반기부터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용 벨로스 생산에 들어간 것.
맹태원 SJM 국내영업부장은 “LNG선박용 벨로스는 영하 160도 이하의 극저온과 400kg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고부가가치 제품”이라면서 “SJM은 벨로스 원천생산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제품 응용성이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 꾸준한 R&D 투자와 신속한 고객 대응
SJM이 이처럼 벨로스 사업이 한계 상황에 이를 때마다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연구개발(R&D)에 꾸준히 투자해 왔기 때문이다.
SJM은 1980년대 중반부터 매년 매출의 2.5%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1995년 자체 기술연구소를 설립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중소 제조업체는 대기업의 주문대로 제품을 ‘찍어 내는 게’ 고작이었다. 중소기업이 독자적인 기술연구소를 설립한다는 것 자체가 당시에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던 것.
김 회장은 “범용 제품만을 생산하는 기업은 단순 하도급업에 머물 수밖에 없다”면서 “고객사의 주문에 맞춰 다양한 제품을 내놓으려면 자체 디자인 능력을 갖는 게 필수”라고 강조했다.
적은 자본과 인원으로 세계의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중소기업에 ‘스피드’는 우수한 품질 못지않게 중요하다. 특히 제품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신제품 주문을 받았을 때 고객사의 요구에 신속히 대응하는 것이 신뢰의 첫걸음이다.
SJM은 이를 위해 연구소와 자재, 생산, 영업부서의 ‘칸막이’를 없애는 데 주력했다.
주 1회 이상씩 각 부서 담당 대표들이 모여 연구설계, 생산, 품질관리, 판매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유사시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한 것.
김경중 SJM 기술연구소 부장은 “고객사가 많은 미국과 독일의 현지 판매법인에 연구소 엔지니어들을 상주시켜 고객의 요구에 실시간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산=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잊지못할 ‘1999년 7월 5일’
SJM 직원들은 1999년 7월 5일을 잊지 못한다.
이날은 SJM이 쟁쟁한 벨로스 경쟁업체들을 물리치고 포드의 대량 납품 계약을 따내 본격적인 수출 기업으로 거듭난 날이기 때문이다.
당시 포드의 주거래 업체는 미국의 시니어플렉소닉이었다. 하지만 이 회사가 포드의 신모델에 납품하기로 한 벨로스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결함이 발생했다. 시험 주행에서 벨로스가 자꾸 깨지는 문제가 발생한 것.
제품 출시를 앞두고 다급해진 포드는 세계 각국의 벨로스 업체에 구원을 요청했다.
SJM이 해결사로 나섰다. 1990년부터 포드에 소량 납품을 해 온 SJM으로서는 절호의 기회였다. SJM은 사태 파악에 나선 지 보름 만에 문제의 원인과 처방을 내놓았다.
세계적인 벨로스 업체조차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한 ‘1등 공신’은 ‘SJM연구소’였다.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 가운데 수출비중이 매출액의 절반을 넘는 기업은 60개 안팎이다.
그중에서도 자체 기술연구소를 가진 업체는 그야말로 손꼽을 정도.
특히 SJM연구소는 꾸준한 투자와 인력 육성으로 남부럽지 않은 규모를 자랑한다. 전체 연구 인력이 36명으로 회사 전체 직원(360명)의 10%에 이른다.
20년 이상 현장 경력을 가진 고참 연구원과 이론에 강한 젊은 연구원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도 이 연구소의 장점이다.
박한승 SJM 연구개발담당 이사는 “경쟁사들은 새 모델을 개발할 때 부피와 크기를 늘리는 방식을 택하지만 우리는 주어진 조건에서 가장 적절한 디자인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면서 “이론보다는 경험을 중시하는 SJM연구소의 특징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안산=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