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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시인 박영근 씨 1주기 추모 유고시집

입력 | 2007-05-11 03:01:00


가까운 죽음을 예감했을까. 박영근(1958∼2006·사진) 시인의 유고 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창비)는 곳곳에 그늘이 져 있다. ‘내 안에 살아 흘러 다니는/불티 몇 점마저/놓아버리고 싶구나’(‘허공’에서)라는 고백에서 힘겨웠을 생의 마지막이 헤아려진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원작 시로 유명한, 노동이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알려 준 시인 박영근. 그의 1주기를 맞아 절친했던 지인들이 유고작 44편을 묶어 냈다. “죽음은 노동의 단절이 아니라 심화라는 것을 알려 준 사람”(김정환 시인)이라는 지인들의 회고처럼, 유고 시집에는 ‘노동자 시인으로 살아가기’의 고뇌가 담겼다.

시 ‘낡은 집’이 그렇다. ‘공단 마을의 단칸방들과 골목을 떠돌다/처음으로 대문 밖을 향하여 이름을 내걸며 웃던,/인천시 부평구 부평4동 10의 22번지…장미철 꽃들이 일제히 목을 떨어뜨리고/그래, 십여 년의 시간이 가파르게 흘러갔다.’

노동 체험을 시로 써 온 그이지만 2000년대 노동 시는 유효하지 않아 보인다. 그런 고민을 시인은 격렬하게 표현한다. ‘제발 80년대니 90년대니, 그런/헛소리로 나를 불러내지 말아요/나는 지금 2000년대의 근사한 헛소리를 씹고 있고/달콤한 똥을 싸고 있다구요.’

근사해 보이지만 실은 헛소리, 달콤한 듯하지만 실은 ‘똥’ 같은 2000년대. 화려하고 풍요로워 보이지만 실은 폭력과 살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임시 묘지였던 세계를 견딜 수 없었던 것인지, 시인은 쉰도 채 안 된 나이에 가 버렸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