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어제 강재섭 대표의 경선 룰 중재안을 거부하면서 “이런 식으로 하면 경선도 없다”고 말했다. “차라리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게) 1000표를 줄 테니 원래 합의된 룰대로 하자”고도 했다. 파문이 일자 박 전 대표 측은 “원칙을 어기면 경선 룰이 의미 없다는 뜻일 뿐”이라고 해명했으나 당이 둘로 쪼개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나라당은 1990년 3당 합당으로 태어난 민자당부터 치더라도 17년 역사와 두 차례의 집권을 통해 나름대로의 정통성을 갖고 있다. 경선도 1992년 도입 이후 이번이 네 번째다. 더구나 원내 128석의 제1당이다. 그런 당이 경선 룰 때문에 깨진다면 부끄럽고 딱한 노릇이다.
국민은 이, 박 두 대선주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 경선 과정에서의 처신도 후보의 리더십과 자질의 일부로서 당연히 유권자의 시험대에 오른다. 이전에 치른 세 번의 경선은 매번 모양이 좋지 않았다. 경선 도중에 탈당하거나 경선까지 간 뒤 탈당해 독자 출마한 사람도 있었다. 이 때문에 정권을 잃기도 했다. 국민은 이번에야말로 민주적이고 성숙한 ‘경선축제’를 보고 싶어 하건만, 두 사람은 그런 기대를 저버리려 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이제라도 유권자인 국민부터 생각해야 한다. 8월 경선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그동안 판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래서 정치를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 하지 않는가. 경선 룰에만 집착하면 경선도 잃고 국민의 마음도 잃을 수 있다.
한나라당 후보로 선출되는 게 곧 대선 승리를 담보하는 보증수표는 아니다. 아직은 범여권에 대항마가 없어 보이지만 언젠가는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둘만의 승부에 빠져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는 건 어리석다. 지금 둘의 지지율을 합치면 60∼70%에 이른다. 정권 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을 보여 주는 수치다. 그 열망을 헛되게 할 것인지, 두 사람의 깊은 자기 성찰이 요망된다. 유권자의 저울은 한나라당과 두 사람의 무게를 계속 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