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결실이 없는 회담이다." "북방한계선은 강도가 그은 선이다."
제5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북측 수석대표인 김영철 중장(우리의 소장급)이 11일 판문점 북측구역 통일각에서 열린 종결회의에서 이번 회담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과 독설에 가까운 불만을 쏟아내 그 배경이 주목되고 있다.
김 단장은 이날 오전 수석대표 접촉을 끝내고 열차 시험운행 군사보장합의서와 공동보도문에 대한 서명을 앞두고 평양을 다녀온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 군사당국 간 회담에서 북측 대표가 합의문 서명을 앞두고 평양을 다녀온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평양에서 돌아온 김 단장은 종결 회의를 앞두고 합의문 낭독만 언론에 공개하자는 우리 측 대표단의 요구를 일축하고 종결 발언을 언론에 공개하자는 주장을 관철했다.
김 단장은 종결 발언에서 작심이라도 한 듯 "허비한 시간에 비해 너무 결실이 없는 회담이었다"며 "모든 사람의 기대는 크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회담하는 사람들은 작은 것을 얻고도 많은 것을 얻은 것처럼 자화자찬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정 대표, 그렇지 않아요?"라며 우리 측 정승조(소장) 수석대표를 겨냥했다.
그는 이어 "기본발언과 관련, (남측은) 지나치게 체면주의에 빠져 있다"며 "상대측 주장이 옳으면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고 쌍방 사이에 해상 경계선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있는 것처럼 강변하면 감정만 상한다"고 언급,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노골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합의된 내용을 임의로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며 "이번 회담 의제는 서해상 충돌방지와 공동어로 문제인데 남측은 개선책만 하자고 한다. 충돌방지는 개선책도 포함되지만 근본적으로 서해 해상 (경계선) 확정을 어떻게 하느냐와 같은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불가침에 관한 기본합의(남북기본합의서) 제3장 10조에서 경계선이 있는 것처럼 해석했는데 북방한계선을 도대체 언제 누구와 합의했느냐"며 "북방한계선은 강도가 그은 선"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서해상 충돌방지와 공동어로 문제는 서해 해상 수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며 "전반적인 북남관계와 관련돼 있고 이를 위해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을 확정하고 공동어로를 실현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공동어로 실현을 위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서해 해상 분계선 문제"라고 강변했다.
김 단장이 종결발언에서 이 같은 강경 발언을 쏟아낸 것과 관련, 일각에서는 그의 이날 평양행과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회담 최종 타결 직전, 평양에 불려가 상부로부터 이번 회담 진행과 관련, 북측 용어로 '총화(비판학습)'를 받고 온 것 아니냐는 것이다.
김 단장은 지난 8일 회담 모두발언에서 부시 대통령을 비난하는 유머를 화제로 꺼냈다가 우리 측 정 수석대표로부터 "미국 대통령을 대상으로 그런 유머를 하는 것을 보면 미국이 자유민주주의가 선진화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되치기'를 당했다.
정 수석대표는 당시 북측을 구체적으로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통상 어떤 곳에 가면 정치 지도자를 대상으로 그런 유머를 구상하는 것이 엄격히 금지된 데가 많다"고 언급, 북측 김 단장이 '판정패'를 당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정 수석대표는 종결회의에서 김 단장의 거침없는 독설에 "취재진을 앞에 두고, 목적을 갖고 발언한 것으로 생각한다"며 "서해 해상 충돌방지 문제와 공동어로를 (남측이) 회피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회담 분위기와 관련해 우리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소모적 논쟁은 하고 싶지 않다"며 "북측 해군사령부가 회담 중에 제3의 서해해전 운운하며 (남측을) 비방한 내용을 알고 있지만 서로 비방하지 않기 위해 밝히지 않겠다"고 꼬집었다.
디지털뉴스팀·판문점=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