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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성석제의 그림 읽기]가짜 같은 진짜, 진짜 같은 가짜

입력 | 2007-05-12 03:01:00

‘브레멘 음악대 따라하기’ 그림=요르크 뮐러(스위스). 비룡소 펴냄


국립대전현충원 입구에서 꽃을 사기 위해 멈췄습니다. 생화도 있지만 조화가 훨씬 더 많아 보이더군요. 생화는 파는 사람의 손에 들려 조심스럽게 다뤄지고 있었고 값도 비쌌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살아 있는 것은 부서지기 쉽고 오래가지 않아 상하게 되니까요.

그런데 조화가 생화보다 훨씬 더 진짜처럼 보였습니다. 화려한 빛깔이 형형색색의 화원을 이룬 듯했지요. 생화를 만져 보면 생명이 주는 부드러움과 축축함, 연약함이 느껴집니다. 이에 질세라 조화는 꽃의 수술 하나하나까지 감쪽같이 그려 넣어서 좀 떨어져서 눈으로 보기만 해서는 식별이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조화가 생화보다 더 진짜 같고 진짜가 가짜보다 더 가짜 같았습니다.

국립현충원 곳곳에는 진짜 꽃이 곳곳에 피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꽃들도 조화처럼 꽃만 있고 잎사귀는 거의 없는 형태였습니다. 꽃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서 개량한 품종이어서 그랬겠지만 저는 그 꽃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혼동되기 시작했습니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가짜를 심어놓을 리 없다는 생각은 들었지요. 그러나 바로 눈앞에 있는 현란하고 다채로운 조화를 보자니 감각이 내린 결론은 생각과 달랐습니다.

조화를 샀습니다. 생화는 오래가지 않을뿐더러 비바람과 햇빛에 시달려서 얼마 되지 않아 추도를 하러 온 분의 비석 주변을 어지럽히기만 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하겠지요. 조화를 선택한 건 잘한 일인 듯했습니다. 대부분의 비석 옆에 생화가 아닌 조화가 꽂혀 있었으니까요.

우리는 대부분 진짜 같은 가짜 속에서 살아갑니다.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조화 같은 가짜가 조화를 부리는 기술이 발달했으니까요. 둘러보십시오. 거울, 거울의 거울, 거울의 거울의 거울을 비추는 거울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기술의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 진짜 같은 가짜가 돼 가는 건 아닐까요.

‘아니야, 우리는 진짜라고!’ 하는 듯이 히말라야시다에 바람이 불어서 나뭇가지를 들어 올리는군요. 꽃을 들고 와서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절하는 우리는 진짜군요. 가짜가 판칠수록 진짜의 가치가 올라간다면 우리 스스로의 가치가, 탁자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는 식구들, 벗의 말소리, 방긋 웃는 아기의 부드러운 입술이 얼마나 귀중한 것이겠습니까.

작가 성석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