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청자 물병(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을 만든 12세기의 한국 도공은 작은 예술품을 만드는 마음가짐으로 작품을 만들었을 것이다…나는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온 한국인이 이 물병의 유쾌한 아름다움에 미소 짓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미술관에는 도슨트(docent)라 부르는 전시 안내원이 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저 눈 한 쌍에 의지해서 미술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라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전시를 보러 가기 전에 도슨트의 안내 시간을 미리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런데 같은 설명 내용이라 해도 어떤 도슨트가 이야기를 전하는가에 따라 전시를 보는 재미가 달라진다. 다양한 변형이 뒤따르는 구전문학의 미덕처럼, 혹은 소리판의 추임새처럼 도슨트 각각의 개인적인 감상이 곁들여지면 작품은 더욱 친근하고 매혹적인 것으로 변한다.
웬디 베케트 수녀는 우리 시대 가장 유명하고도 친근한 도슨트라 하겠다. 전문가적 감식안은 물론이고 할머니라는 ‘지위’가 주는 푸근함, 종교인으로서의 깊은 통찰력 덕분에 소개하는 작품 하나하나를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책을 읽다 보면 당장에 발품을 팔아 직접 가 볼 수는 없지만 마치 입담 좋은 도슨트와 함께 미술관 관람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 세계에서 미술관이 가장 많은 나라인 미국의 미술관을 소개한 이 책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보스턴 미술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등 꼭 찾아가 봐야 할 미술관 여섯 곳과 그 소장품을 안내한다. 선정된 미술관도 소개된 작품도 모두 웬디 수녀만의 시각이 반영된 것인데, 유럽 회화를 위주로 했던 이전의 글과는 달리 아프리카 원시미술부터 데이비드 호크니의 최신 회화, 또한 전장의 갑옷에서 탁자 위의 게임 세트에 이르는 다양한 미술품을 다루고 있다.
그녀의 글이 많은 사람에게 따뜻함을 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웬디 수녀만의 ‘추임새’ 덕분이다. 엘 그레코가 그린 ‘호르텐시오 펠릭스 파라비시노 수사’를 이야기할 때는 그가 너무도 젊고 아름답고 지적인 시인이자 성직자라서 질투가 난다고도 하고, 한국의 분청사기 병 하나를 두고는 그 안에 우유나 묽은 수프, 혹은 와인이 들어 있을 것 같다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곁들이기도 한다. 미국 남부의 킴벨 미술관을 소개하면서는 훌륭한 소장품보다도 눈부신 미술관 건축에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경쾌함은 근본적으로 예술작품과 문화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다. 그녀는 한 이집트 여왕의 두상 단편을 보면서 입술과 턱 부분만 겨우 남아 있는 이 작품이 무자비하게 훼손된 시기의 안타까움을 이야기하고, 동시에 수천 년이 지난 후에나마 비로소 그것이 훌륭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아채는 이 시대의 안목을 함께 말한다.
미술관에서는 이렇게 머나먼 시간을 관통하여 ‘매혹적인 과거’를 만나게 된다. 또한 그녀의 말처럼 “어떠한 선입견이나 방어, 조급함 없이 작품들을 볼 준비만 되어 있다면 예술은 우리를 변화시킬 것이다”.
황록주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