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옥천교 위를 여러 번 거닐어 본다. 옛적 군왕을 흉내 냄이 아니다. 어지러웠던 조선 왕조의 역사를 회억하는 것도 아니다. 다리라는 이름을 가진 조각품을 감상할 따름이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 거뭇거뭇해진 난간의 빛깔마저 더욱 장중함을 느끼게 한다.》
메마른 마음에 그리움의 다리 놓다
이 책은 빨리 읽을 수 없는 책이다. 책 속에 담긴 사진이, 다음 페이지로 이어지는 문맥이 끊어지는지도 모르고 독자를 유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20여 년이 넘도록 집요하게 돌다리를 찾아다닌 저자의 풍부한 자료와 정보, 이를 풀어내는 미려한 문장은 책을 더욱 단단한 돌다리처럼 만들었다. 오랜 여행과 집필을 통해 겪었을 수많은 고통을 덜어내고, 저자는 깔끔하게 즐거움만을 주고 있었다.
저자가 자상하게 들려주는 다리 이야기를 통해, 참으로 오래된 것들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머무는 것들의 영원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여행을 하듯이 즐겁게 읽다가, 문득 왜 다리 사진에 사람들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서두에 임권택 감독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아름다운 여인이 건너는 다리 사진이 있지만 그 뒤로는 오로지 다리만 있었다. 외로웠다. 사람이 그리웠다. 물론 글 속에서는 수없이 많은 사람이 손을 나에게 내밀었지만….
책을 읽다가 중간쯤에서 잠시 멈춘다. 편집자가 그런 의도를 알아서일까, 아니면 필자의 배려일까. 송광사 편을 보니, 신록이 가득한 송광사 청량각 홍교 위에 사람들이 머물고 있었다. 나도 그쯤에서 그들과 어울려 잠시 쉬었다. 책을 읽는 동안 많이 걸은 것 같아 ‘마음의 다리’가 좀 쉬고 싶어 한다. 그리고 여행의 여정이 끝나 갈 무렵에는 홍예교 아래에서 할머니들이 빨래를 하는 장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책을 읽는 것도 마치 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다. 내가 지금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를 만나러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저자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혹은 이미 사라진 우리네 민초들의 섶다리부터, 차안과 피안을 건너는 불가(佛家)의 다리, 예술 작품인 궁궐의 다리에 이르기까지 거침없이 다리 위를 걸어간다. 흙다리 나무다리 돌다리 그리고 물위에 세운 다리가 아닌 산중에 있는 너럭바위다리까지. 이렇게 다양한 다리, 다리들.
사진들은 독자를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하고, 거닐게 한다. 중간 중간 그 다리에 머무는 마음은 어떤 때는 애잔하고, 어떤 때는 웃음이 나오고, 또 어떤 때는 비장하기도 하다. 우리의 다리를 통해 그는 우리의 잃어버리고 있는 ‘거시기’를 보여 주고 생각하게 한다.
황산벌에 있는 원목다리 편을 보면 호남선 철도변에 원목다리가 있다. 질주하는 기차 밑으로 원목다리가 선명하게 서 있다. 달리는 기차는 흐릿했다. 빨리 가는 것과 움직이지 않고 거기에 있는 두 사물의 대비를 통해 그가 찍고 쓴 것은 아마도 원목다리처럼 우리 곁에 오래 머물 것이다.
저자에게 감사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메말라 버린 마음에 연못을 파서 섬을 만들고, 거기에 연꽃을 띄웠고, 그리운 사람에게 가는 나무다리를 놓았다.
원재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