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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기자의 히트&런]김재박 감독의 이대형 기살리기

입력 | 2007-05-15 03:01:00


가까이서 김재박 LG 감독을 지켜본 사람들의 말은 한결같다. “참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현대 시절이던 2004년 시범경기 때 김 감독은 박진만(삼성)의 플레이가 느슨하다는 이유로 기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자신의 손에 피가 밸 정도로 펑고(야수들의 수비 연습을 위해 공을 쳐 주는 일)를 한 적이 있다.

사건은 혹독한 훈련이 끝난 뒤 벌어졌다. 숨을 헐떡이며 라커룸으로 들어가던 박진만의 입에서는 욕이 튀어나왔다.

주위에 들릴 만큼 큰 소리였다. 한바탕 난리가 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김 감독의 얼굴엔 뜻밖의 미소가 감돌았다. “그래, 바로 그렇게 독기를 품어야지”라는 말과 함께.

올해 LG로 옮긴 김 감독 앞에는 공개적으로 욕을 하는 선수가 있다. 입단 5년차 톱타자 이대형이다.

차이가 있다면 이대형은 김 감독의 ‘묵인’이 아니라 ‘지시’에 따라 욕을 한다는 것.

2월 오키나와 캠프 때부터 김 감독은 이대형을 눈여겨봤다. 그러나 근성이 부족해 보였다. 김 감독은 “재질은 있는데 흐리멍덩한 선수”라고 했다.

그날부터 이대형은 전 선수단이 모인 가운데 욕을 소리 내 외쳐야 했다. 목소리가 김 감독의 마음에 들 때까지 이대형의 욕하는 소리가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얼마 전 김 감독과 기자들이 모여 있는 앞을 이대형이 지나가자 김 감독은 “이대형, 한번 해봐”라고 했다. 이대형은 영어로 욕을 큰 소리로 외쳤다.

김 감독은 대신 항상 든든한 벽이 되어 준다. 지난달 22일 삼성과의 경기 연장 12회. 이대형은 1루에서 간발의 차로 아웃된 후 심판에게 격렬하게 항의했다. 평소 순둥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자 김 감독은 득달같이 달려 나와 모자를 땅에 내팽개치며 대신 항의를 했다. 역시 평소의 김 감독답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판정도 판정이지만 이대형의 기를 살리기 위한 행동”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 감독의 믿음은 한국 최고의 유격수 박진만을 키웠다. 올 시즌 13개로 도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대형은 김 감독이 심혈을 기울이는 또 다른 작품이다.

착하다 못해 항상 웃는 얼굴인 두 선수가 김 감독을 만난 것은 행운일지도 모른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