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남부 지역에서 잇따라 실종된 부녀자 4명 가운데 수원에서 사라진 박모(36·여) 씨가 숨진 채 발견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경찰은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하면서 일부에서는 숨진 박 씨가 팬티스타킹으로 목이 졸린 것에 주목해 과거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악몽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당시 피해 여성 10명 가운데 스타킹 등 옷가지에 목이 졸려 살해당한 피해자가 7명에 이른다. 미국에서는 연쇄살인마가 한동안 범행을 중지했다가 다시 범행에 나선 사례가 있지만 국내에는 보고된 사례가 없다. 전문가들은 화성사건의 최초 범행과 이번 부녀자 실종사건의 간격이 20년인 점을 들어 화성연쇄살인범의 재범일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말한다. 다만 화성사건의 모방범죄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다.》
○ 美 로버트 예이츠 10년마다 살인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화성시 태안읍과 정남, 동탄면 등지에서 13∼71세 여성 10명이 차례로 살해된 전형적인 연쇄살인사건이다. 범행 장소는 태안읍사무소 주변 지역으로 대부분 반경 3km를 넘지 않았다.
정확히 20년 뒤 발생한 이번 사건의 피해 여성들은 모두 거리나 도로, 정류장 인근 등 비교적 공개된 장소에서 납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공교롭게도 이 가운데 숨진 박 씨와 배모(45) 씨, 회사원 박모(52) 씨 등은 화성시 비봉면 일대에서 휴대전화가 끊겼다. 여대생 연모(20) 씨의 행적이 끊긴 수원시 권선구 금곡동에서 차량으로 불과 20여 분 거리다.
살해 수법이나 시체 유기 방식도 흡사하다. 과거 화성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신고 있던 스타킹, 양말 등으로 손발을 묶거나 목을 졸라 살해한 경우가 7건에 달한다. 손 등 신체를 이용해 목을 조른 경우가 2건이다.
두 사건 모두 흉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도 비슷하다.
2000년 미국에서 13명을 살해한 혐의로 408년형의 징역형을 받은 로버트 예이츠는 10여 년 주기로 살인 행각을 벌였다.
예이츠는 1996년부터 1998년까지 13명의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붙잡혔으나 조사 과정에서 1975년 2명, 1988년 1명 등 거의 10년 주기로 연쇄살인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경찰대 행정학과 표창원(41) 교수는 “시신을 유기한 방법 등으로 봐서는 (과거 화성사건과) 유사점이 있지만 시간적으로나 다른 범행수법으로 볼 때 두 사건을 연결시키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표 교수는 “‘BTK’(묶어 놓고, 고문하고, 살해한다의 약자)로 불린 미국의 연쇄살인범 데이스 레이더같이 20년 가까이 장기간에 걸쳐 10명을 살해했다가 30년 만인 2005년 검거된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 새로운 연쇄살인범의 등장?
과거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행 장소는 대부분 인적이 드문 야산이나 논밭이었다. 범인은 숲이나 외진 곳에 숨어 있다가 피해자를 위협해 끌고 가 범행을 저질렀다.
반면 이번 사건의 경우 범인이 차량을 이용했고 납치, 살해, 암매장 장소가 각각 다르다는 점에서 과거 화성사건과는 일정한 차이점을 보인다.
이런 점에서 전문가들은 새로운 연쇄살인범의 출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표 교수는 “미국에서는 1970년대에 차량을 몰고 다니며 수십 명을 성폭행하고 살인한 테드 번디라는 연쇄살인범이 있었다”며 “이번 사건의 범인도 차량을 잘 이용하는 새로운 연쇄살인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장석헌(47) 교수는 “범인은 시체 암매장 지역으로 출퇴근을 하는 등 지리감이 뛰어난 사람으로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연쇄살인범의 경우 범행을 저지를수록 수법이 진화하는 것이 보통”이라며 “이번에도 가까운 지역에 시체를 묻거나 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 경찰 수색이 더 넓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