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마이비’는 멀티라이프스타일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한국 자동차 시장에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어갈 전망이다. 사진 제공 벤츠 코리아
국내에 ‘마이 비(My B)’로 소개된 벤츠 B200은 다양한 가치를 담고 있는 자동차다.
그래서 차의 성격도 멀티라이프 스타일차량(MLV)으로 규정됐다.
가격은 벤츠 차종 중 가장 낮은 3690만 원. 현대자동차 ‘그랜저 L330’과 비슷하다. 최고를 지향하는 벤츠의 ‘세 꼭지 별’을 달기에는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일단 한국 시장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 3월 28일부터 판매가 시작돼 지금까지 300여 대가 계약됐다.
특히 30대 여성들에게 높은 인기를 얻으면서 ‘세련된 여성의 차’라는 새로운 트렌드도 형성해 가고 있어 아직 저가 모델을 들여오지 않은 경쟁사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그래도 벤츠는 벤츠
성능은 2500만 원짜리 국산 중형차와 비슷하다. 4기통 2035cc 엔진에 최대출력 136마력이다.
실제로 측정한 시속 100km까지 가속력은 9.8초이고 최고속도는 시속 183km로 평범했다.
다만 CVT(무단 자동연속변속기)가 들어가 변속충격을 거의 느낄 수 없는 것이 장점이다. 연료소비효율 위주로 변속기가 세팅돼 시내에서 L당 8∼9km, 고속도로에서는 15km를 갈 수 있었다.
핸들링은 높은 차체에 비해서는 괜찮은 편이다. 코너를 돌아갈 때 적당히 차체의 기울어짐을 허용하지만 일반 브랜드의 동급 차량들이 보이는 허무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그래도 벤츠는 벤츠인 모양이다.
내부 인테리어는 단순하면서도 깔끔하다. 브랜드가 벤츠라는 기대치만 없으면 불만이 없을 정도다. 다만 벤츠이기에 원가를 절감한 흔적들이 눈에 거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외부 디자인은 5000만 원짜리 이상이다. 군더더기 없이 잘 다듬어진 차체에다 라디에이터그릴에 붙은 벤츠 마크는 비록 허영이라 할지라도 이유 없는 만족감을 선사한다. 게다가 스포츠 패키지를 더하면 외모는 훨씬 세련되게 변한다.
○ 나도 벤츠 오너
서진영(28·주부) 씨는 신문광고에 난 마이 비를 보고 갖고 싶다는 소유욕을 느꼈다.
그래서 서울모터쇼에 찾아가 직접 실물을 확인하고 남편과 상의해 4월 말 계약했다. 25일경 인도받을 날이 손꼽아 기다려진다.
서 씨는 마이 비가 콤팩트해 여성이 운전하고 주차하기 편한 데다 디자인이 귀여우면서도 탄탄하고 품위가 느껴지는 데 큰 매력을 느꼈다. 게다가 벤츠를 소유한다는 기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서 씨처럼 세련된 스타일을 추구하는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의 여성들이 주로 마이 비를 선택하고 있다.
벤츠에 따르면 20, 30대가 구입고객의 절반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풍족한 1980년대를 거치고 누구보다 먼저 배낭여행, 인터넷을 통해 해외문화와 트렌드를 접해 온 신세대의 원조로 유행과 감성에 민감한 현대인이라는 분석이다. 구입고객의 성비도 여성이 66%로 남성보다 높았다.
김상균 한성자동차 차장은 “고객 대부분이 1975년생 전후 여성들로 다양한 할부 제도를 이용해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며 “젊은 여성들 사이에 ‘마이 비를 소유하고 싶다’는 새로운 자동차 트렌드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 “30대 겨냥 경쾌한 벤츠로 다가갑니다”▼
‘마이 비’의 산파 역할을 한 김예정(43·사진)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마케팅 담당 상무.
김 상무의 눈은 호기심 많은 소녀처럼 항상 반짝인다. 20대 못지않은 열정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벤츠를 더 빛나게 보이도록 할 수 있을까요.”
벤츠의 국내 마케팅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는 그는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벤츠에 대해 알려 달라’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항상 귀를 열어 놓고 창의적이면서 차별화된 마케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 싶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열정과 고민이 ‘마이 비’라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함께 뮤지컬을 통한 자동차 발표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마이 비를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지난 1년을 하루처럼 보냈어요.”
‘B200’이라는 본래의 이름으로는 마케팅에 성공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상위모델의 판매에도 지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그는 차에 새로운 이름과 존재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사회활동이 왕성한 고소득 30대를 마케팅 타깃으로 정했다. 뮤지컬 시놉시스와 마이 비를 상징하는 정육면체 아이콘의 기본 디자인 제작도 그가 이끄는 마케팅팀이 직접 해냈다.
“외부에서는 신차 발표 행사에 엄청난 비용이 들어갔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대부분의 작업을 우리가 직접 하기 때문에 일반 발표 행사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요.”
화제를 모았던 ‘뉴 E클래스’의 김포공항 항공기 격납고 발표회도 그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그는 “벤츠가 자동차 중에 브랜드 가치가 가장 높아 마케팅을 하기에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앞서 가야 한다는 부담감은 그 어떤 브랜드보다 크다는 것이다.
“보수적이고 까다로운 장년층 고객들과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고소득 전문직 젊은층까지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숙제를 안고 삽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족과 함께 호주로 간 그는 현지에서 중고교를 졸업하고 뉴사우스웨일스대에서 경제학 학사와 석사를 취득했다.
미국 NBC방송국에서 잠시 일한 그는 유니레버코리아에서 홍보·마케팅 업무를 처음 시작했다. 이후 한국 크리스천디오르의 마케팅을 담당했고, 홍보대행사를 직접 운영하다 이를 정리하고 벤츠 한국 법인이 출범한 2003년 지금의 위치에 합류했다.
당시 벤츠는 보수적인 이미지가 굳어져 다양한 계층에 대한 판매가 부진했지만 유연한 이미지의 그가 온 뒤 사내 분위기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차가 좋으니 알아서 사 가라’는 식의 권위적인 마케팅도 고객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이 때문인지 2003년 3100여 대였던 판매량은 지난해 5000여 대로 뛰어올랐다.
그는 “판매량도 중요하지만 벤츠가 자동차의 성능만큼 한국에서 존경받고 사랑받는 자동차 브랜드로서 자리를 잡는 데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