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통령 인수인계식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16일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과 인수인계식을 갖고 23대 대통령에 공식 취임했다.
인수인계 및 취임식은 조촐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날 오전 엘리제 궁의 집무실에서 핵무기 코드를 넘겨받았다. TV 생중계 화면에도 비치지 않은 인수인계는 40분 만에 끝났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엘리제 궁 앞뜰로 나와 시라크 전 대통령을 환송했다. 이어 헌법위원장의 선거 결과 공식 발표, 사르코지 대통령에 대한 레지옹 도뇌르 훈장 수여식이 진행됐고 10분 정도의 취임 연설이 있었다. 그는 “세계가 급변하는 이때에 국민이 맡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부인 세실리아 여사와 다섯 자녀, 친지와 각계 인사가 참석했다. ‘카우보이 부츠를 신은 대통령 부인’으로 최근 이름을 알린 세실리아 여사는 단정한 아이보리색 드레스 차림이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어 개선문에 있는 무명용사의 묘를 참배했고 샹젤리제 거리의 샤를 드골 장군 동상에 헌화했다.
이날 12년 만에 엘리제 궁을 떠난 시라크 전 대통령은 마지막 순간 감회 어린 표정이었다. ‘시민 시라크’로 돌아간 그는 거처가 정해질 때까지 루브르 박물관 맞은편 아파트에서 임시로 거주한다.
프랑스인들은 떠나는 시라크 전 대통령에게 ‘애증 어린’ 경의를 표했다. 그는 15일 TV로 중계된 고별 연설에서 “국가는 하나의 가족”이라며 화합을 당부했다.
이날 언론도 그의 12년 대통령 재임 기간과 40년 정치 인생을 집중 조명했다. 특히 ‘정치적 동물’이라는 표현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러나 그의 정치 인생은 공과가 뒤섞여 한 가닥으로 평가하기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이력은 실로 화려하다. 1972년부터 여러 차례 장관을 지냈고 두 차례 총리를 역임했다. 삼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됐고 재선도 이뤘다. 18년 동안 파리 시장을 지냈고 좌우 동거 정부도 두 차례나 겪었다.
그런 그를 가리켜 어떤 이는 “권력욕에 불탄 정치권의 ‘돈 후안’이다”라고 묘사했다. 르 피가로는 “한결같은 정력으로 권력을 얻었다가 잃고 되찾기를 반복했다”고 평가했다. ‘수수께끼 같은 인물’ ‘변덕쟁이’라는 별명도 따라붙었다. 그러나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국제 문제에 대한 식견이 높은 인물”로 여전히 그를 치켜세운다.
그러나 재임 12년간의 성적표는 좋지 않았다. 프랑스 경제는 계속 추락하는데도 변변한 개혁을 추진하지 못했다. 특히 이슬람권과의 화합을 위해 이민자를 적극 수용한 정책은 큰 부작용을 낳았다는 지적을 받는다.
파리4대(소르본대)의 자크 마르세유 경제학 교수는 최근 “시라크 덕분에 1995∼2007년 역사는 아주 빨리 쓸 수 있게 됐다.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고 꼬집었다.
단 국제 문제에 있어서 시라크 전 대통령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90년대엔 유고 내전을 종식하는 데 중요 역할을 수행했으며 서방 세계와 아랍권의 화합, 아프리카 빈곤 퇴치에 앞장섰다. 2003년 이라크전 반대를 주도하며 미국식 일방주의를 견제한 것도 대체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퇴임 후 생활은 당분간 시끄러울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 면책특권이 6월 16일 종료됨에 따라 그는 파리 시장 재직 때의 공금 유용 사건으로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한 시라크 전 대통령은 40년 정치 인생의 경험을 살려 빈곤 퇴치, 환경 보호 분야에서 계속 활동할 예정이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