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대타(代打)’로 나설 대선주자를 찾는다는 이른바 범여권의 움직임이 정말 가관이다. 정 전 총장이 불출마 선언을 한 뒤 한동안 낙담해 있던 비노(非盧) 반(反)한나라당 일각에서 이번엔 박해춘 우리은행장 이름까지 내놨다.
정대철 열린우리당 상임고문은 최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당 밖에 손학규 전 경기지사,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당내엔 정동영 김근태 전 의장, 한명숙 전 총리 등이 있지만 문을 더 넓게 열고 ‘정운찬 대타’를 찾아봐야 한다”고 했다. 그 대타 중 한 사람이 박 행장이라는 것이다. 충청(충남 금산) 출신이라 ‘호남+충청’ 연대 전략을 짜기도 좋고, 심지어 박 행장의 ‘연세대-금융업’ 경력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고려대-건설업’ 이력과 대비되는 것도 이점(利點)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우리 정치가 아무리 희화화(戱畵化)됐기로서니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정치를 할 사람, 그것도 대통령 후보가 될 사람이라면 최소한 ‘그가 걸어온 길로 미루어 국가 지도자가 될 만하다’는 작은 공감대라도 있어야 한다.
박 행장은 보험회사에서 출발해 신용카드 사장을 거쳐 우리은행의 경영을 맡은 지 두 달이 채 안 되는 사람이다. 그가 정치에 뜻을 세웠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도 없다. 심지어 범여권 내에서도 그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박해춘이 누구지”라고 서로 묻는다고 한다.
요즘은 웬만한 연예기획사도 이런 식, 이런 수준으로 스타를 발굴하지 않는다.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는 로드매니저와 이들을 감독하는 팀장 등이 몇 단계의 분석과 검증을 거쳐 인재를 찾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 스타로 키워낸다.
여권이 대선 흥행을 위한 불쏘시개나 액세서리로 한번 내세워 보는 것이라면 더더욱 용서하기 어렵다. 그건 국민과 정치에 대한 모독이다. 열린우리당은 2003년 민주당을 깨고 나오면서 대선 빚 43억 원까지 떠넘긴 당이다. 개인이었다면 벌써 신용불량자가 됐을 것이다. 지금은 당 해체 운운하며 ‘위장(僞裝) 파산신청’까지 노리고 있다. 그런 당이 이제는 자신들도 잘 모르는 사람을 대선 주자로 거론하고 있으니 정말 갈 데까지 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