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울포위츠(사진) 세계은행 총재가 같은 직장에 다니는 여자 친구에게 특혜를 준 사실이 드러나 사퇴 압력을 받게 된 일을 계기로 ‘직장 내 연애’의 부작용을 방지할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고문 변호사 패티 월드마이어 씨는 16일 ‘섹스, 일 그리고 울포위츠 효과’라는 제목의 신문 칼럼에서 “세계은행의 위상까지 흔들리게 한 울포위츠 스캔들은 직장 내 로맨스가 조직에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잘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서구에서 ‘사무실 로맨스’는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미국인의 절반가량은 직장 내 로맨스에 연루된 적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여러 차례 나왔다. 직업정보회사 볼트사가 올해 초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17%가 회사 계단이나 간이 주방, 심지어는 중역 회의실에서 밀회를 나누다 들킨 적이 있다고 밝혔다. 직장에서 배우자나 연인을 만나 오랫동안 사귀고 있다는 비율도 20%였다.
사무실 로맨스가 문제되는 이유는 울포위츠의 사례에서 보듯 연인 간의 감정이 조직 운영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남자 상사는 연인 관계인 부하 여직원에게 특혜를 주거나 사이가 나빠지면 보복 인사를 할 수 있다.
울포위츠 총재의 경우 여자 친구 샤하 리자 씨에게 승진을 보장하고 36% 급여 인상을 지시해 문제가 됐다. 여사원은 “성희롱을 당했다” “성차별을 당했다”며 사이가 틀어진 연인과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미국의 고용 문제 전문 변호사들은 ‘사무실 로맨스’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사랑 계약서(love contract)’ 제도를 도입하라고 제안한다. 입사할 때 ‘직장에서 밀회 현장을 들키지 않는다’ ‘사랑이 증오로 변하더라도 상대를 괴롭히지 않는다’ 등의 내용을 담은 계약서에 서명하도록 하는 것이다.
1980년대 중반 미국의 한 첨단기술 회사가 이 같은 계약서 제도를 처음 도입한 뒤 요즘은 세 사람이 연루된 연애 관계 또는 동성애 문제를 다루는 규정을 두거나 사원의 배우자들까지 계약서에 서명하도록 하는 회사도 있다.
이 같은 규정이 있더라도 성희롱이나 성차별 등으로 인한 소송을 피할 수는 없다. 그래서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간 모든 ‘부적절한’ 관계를 전면 금지하는 기업도 있다.
월드마이어 변호사는 “미국 고용주의 4분의 3은 이 같은 문제에 아무런 대책도 없다”며 “세계은행이 총재의 스캔들 하나로 파괴되는 과정을 보면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