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진역으로 들어오는 동해선 열차 17일 반세만에 휴전선을 넘은 동해선 열차가 고성 제진역에 들어오고 있다. 연합
군사분계선 넘어 동해선 달리는 열차 57년만에 역사적인 동해선 열차시험 운행이 열린 17일 북측 열차가 강원도 고성군 제진역을 향해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연합
북측 여 승무원들 57년만에 역사적인 동해선 열차시험 운행이 열린 17일 금강산 청년역에서 북측 승무원들이 탑승객들에게 음료를 제공하고 있다. 연합
57년 동안 잠자던 동해선의 철마(鐵馬)가 다시 깨어난 시각은 17일 오전11시 27분. 북한 금강산역에서 시험운행에 나선 남행 열차는 '뿌우우~'하는 기적소리를 울리며 기지개를 켰다.
오랜 동면 탓인지 철마는 앞뒤로 덜컹거리기를 서너 차례 반복한 뒤에야 10km 정도의 속력으로 남측 제진역을 향해 서서히 움직일 수 있었다.
금강산 자락을 좌우로 굽이치며 달리는 사행(蛇行) 철도인 탓에 동해선 열차는 시속 20km를 넘지 않는 속도를 유지했다. 그래도 곡선 철로를 달릴 때는 차체가 좌우로 기우는 느낌을 받았다.
열차에 탑승했던 한 철도 관계자는 "북측으로서는 최신 기종의 차를 내놓았겠지만 기술력의 격차가 우리와는 30년 정도는 나는 것 같다"며 "비둘기호 수준"이라고 말했다.
새마을호 기준으로 1량에 64석인 남측 객차와는 달리 북측 열차엔 106명이 앉을 수 있다. 대체로 우측 좌석에 3인, 좌측 좌석에 2인이 앉을 수 있어 한 줄에 5명이 탑승 가능하기 때문. 하지만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은 남측 객차에 비해 훨씬 좁았다.
객석은 서로 마주 보도록 고정돼 있었다. 자리를 뒤로 젖힐 수도 없었다. 시트와 등받이가 거의 수직을 이루고 있지만 아이보리 색의 비닐 시트는 생각보다 푹신했다.
소음은 적어서 창문을 열고도 대화를 나누는 데 큰 지장이 없었다. 동해선 열차 시험운행에 남측 기관사로 참여했던 동해기관차승무사무소 김동률 기관사는 "1968년식 기관차였지만 관리를 굉장히 잘해서 기관실과 운전실 모두 깨끗했다"며 "남측 엔진은 2행정 디젤기관인데 비해 북측은 4행정 디젤기관이라 훨씬 조용했다"고 설명했다.
열차 뒤편으로 멀어지는 금강산의 모습과 논에 나와 일을 하는 북한 주민들의 일상을 보면서 상념에 잠길 무렵 열차가 갑자기 속도를 줄였다. 북측 구간의 마지막 역인 감호역이었다.
낮 12시경 세관원 4명과 역무원 2명이 칸마다 탑승했다. 그중 한명이 "첫 열차 운행의 승객이 된 여러분들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이제부터 통관 및 세관 검사를 실시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검사를 시작했다.
사진이 첨부된 명단과 실제 탑승객을 대조, 확인한 뒤 남측 인원들이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의 내용을 철저히 검사하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낮 12시15분. 예정된 군사분계선 통과까지 불과 5분이 남았다.
기차는 다시 우렁찬 기적소리를 내며 속도를 냈다. 이번엔 시속 40~50km는 되는 느낌이었다. 흔들림이 심해졌지만 좌석 옆에 놓여진 음료수대에 올려진 병이 넘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기적소리가 울릴 때마다 속도가 조금씩 높아지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곧 군사분계선을 넘는다"는 말이 나왔고 승객들의 시선이 모두 창밖으로 쏠렸다. 낮 12시 21분 하얀 말뚝이 박힌 군사분계선을 통과했다. 객차 내에선 박수소리와 함께 환호성이 터졌다.
이날 반세기만의 군사분계선 통과 임무를 완수한 열차는 북한에선 특별한 열차였다. 기관차 옆면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몸소 오르셨던 차. 1968년 8월 9일'이라는 글귀와 '영예상 26호'라는 푯말이 붙어있었다. 초록색과 하늘색으로 칠해진 이 객차는 김종태 전기기관차 공장에서 생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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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선=공동취재단,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