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미(공무원)와 일반미(민간인)는 맛과 가격이 다릅니다. 정부미도 일반미인 ‘철원 청결미’나 ‘이천 임금님표 쌀’처럼 비싸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공무원들의 오해가 없기 바란다. ‘일반미’가 아니라 ‘정부미’가 한 얘기다.
몇 년 전 중앙 부처의 한 국장이 ‘관료사회 정말 변하고 있는가’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토로한 자성(自省)의 목소리다.
이 국장은 “고시 출신 젊은이가 관료 사회에 들어오면 너나없이 (품질이 떨어지는) 정부미가 돼 버리고 민간 부문 종사자들보다 우수하다고 착각한다”고 꼬집었다. 공무원은 독점적인 지위에 있어서 민간보다 우수해 보일 뿐이지 진짜 우수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1979년 5월 18일에는 정부가 정부미를 일반미로 둔갑시킨 사건이 벌어졌다. 착각 없기 바란다. 공무원을 민간인으로 뒤바꾼 것이 아니라 진짜 쌀 얘기다.
당시 농수산부는 미질(米質)이 좋은 정부미 일부를 일반미로 재포장해 20% 정도 더 비싼 가격으로 판매한 사실을 이날 시인했다. 정부의 해명은 일반미 값이 크게 오르자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 의도는 순수했다는 항변이었다.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도둑을 잡아야 할 경찰이 도둑질을 한 격’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야당인 신민당은 성명을 내고 “정부미를 일반미로 속여 판 양곡상을 적발해 온 정부 당국이 스스로 파렴치한 행위를 저질렀다”고 따졌다.
사흘 뒤 동아일보 사설도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할 정책 수행자들이 이런 간계(奸計)를 썼다는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 아닐 수 없다”고 개탄했다.
이에 농수산부는 ‘정부미의 일반미 재포장 판매’를 부랴부랴 철회했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흘렀지만 진짜 정부미(쌀)는 여전히 인기가 없다. 요즘도 정부미를 일반미로 속여 팔다가 적발되고 있다. 학교 급식 쌀을 일반미로 바꿔 달라는 요구도 많다.
그러나 ‘정부미(공무원)’의 인기는 하늘 높을 줄 모른다. 9급 공무원의 99.2%가 대졸 학력이고 20대와 30대 직장인 3명 중 1명이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세상이다.
정부미(쌀)가 철원 쌀이나 이천 쌀처럼 맛있어지는 날, ‘정부미(공무원)’들이 민간 영역에서처럼 치열한 경쟁력으로 무장하는 날. 둘 중 어느 날이 먼저 올까. 과연 오기는 오는 걸까.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