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군대용품을 판매하는 ‘DMZ’의 윤현진 사장은 평소에도 군복 차림을 즐기는 밀리터리 마니아. 자동차도 거금을 들여 ‘국방색’으로 도색했을 정도다. “입다 보면 군복만큼 편하고 폼 나는 게 없다”는 예찬이 끊이지 않는다. 원대연 기자
《군대 용품의 인기가 예사롭지 않다.
‘밀리터리 패션’의 열풍이 젊은 층을 휩쓴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 요즘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찾는다. 군대 생활에 요긴한 아이디어 물건을 파는 곳도 있고,
군대 간 남자친구에게 줄 선물을 파는 인터넷 사이트도 있다. 그런가 하면 골동품처럼 몇십 년 묵은 진짜 군복을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
군대용품이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한 누리꾼은 “현실과 추억이 공존함과 동시에 색다른 독특함도 주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군사문화의 잔재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코드로 자리 잡은 셈이다.》
밀리터리 문화를 즐기는 다양한 사람들
○요즘 군대에선 이런 것도 쓴다
예전 군대에선 지급된 물품이 아니면 사용이 금지됐다. 물론 몰래 쓰는 ‘간 큰 군인’도 있었지만. 최근엔 병영생활에 도움이 된다면 ‘사제 용품’도 지나치지 않은 범위에서 허용하는 부대가 많다고 한다. 군에서 제대한 예비역들도 편하다며 즐겨 찾는다.
양말은 사시사철 잘 나가는 품목. 날씨가 더워지면 특별한 양말이 인기다. 얇은 실로 짜 통풍이 잘되는 여름양말과 바닥에 고무로 된 돌기가 있어 군화와 밀착되는 발포양말이 대표적인 예. 발포양말은 행군을 하거나 훈련을 받을 때 좋다. 발목과 발바닥을 잡아 주는 이중양말도 인기 아이템.
철모 속에 대는 땀받이도 많이 팔린다. 훈련 때 땀이 흐르는 걸 막아 주고 머리도 보호한다. 냄새도 어느 정도 막아 주니 일석삼조다.
‘즉석 뽀글이’ 스팀 쿠커는 계절을 타지 않는다. 발열체가 내장되어 찬물을 부어도 군대 별미인 라면을 앉은 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 다른 음식물도 데워 먹을 수 있다.
봄철 황사 시즌엔 황사용 마스크가 잘 나간다. 겨울철엔 다양한 기능의 장갑이나 안면마스크, 귀마개, 핫팩이 인기 상품이다.
○고생하는 애인 위해 이 정도 선물은 기본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최근 곰신의 선물 트렌드 중 하나는 ‘폭탄편지’다. 편지나 엽서 100통을 한꺼번에 보낸다. 군에 있는 남자친구야 이런 감격이 없지만 여자친구가 없는 주위 동료의 질시는 감수해야 한다.
먹을 것을 잔뜩 싸 보내는 종합선물세트는 전통적인 인기 선물. 요즘은 군에서도 어지간한 과자는 구할 수 있어 고급 수입과자세트를 많이 찾는다. 여름철에는 물에 타서 먹는 이온음료 가루도 잘 팔린다.
군인 남자친구와 사회인 여자친구가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 ‘군바리와 고무신’은 단순한 선물의 수준을 넘어 군 입대를 앞둔 커플의 필독서가 됐다. 그림과 만화를 곁들여 읽기 편하면서도 그들만의 심경을 놀라우리만치 정밀하게 묘사한다. 후속편 ‘러브레터’도 인기몰이 중.
화장품도 잘 나간다. 스킨이나 로션, 선블록 크림은 필수다. 핸드크림이나 코팩, 세안용품이나 화이트닝 제품을 구하는 애인도 많다. 다만 군대에서 일일이 쓸 여유가 있을지는 의문.
○실제 군대 용품도 많이 찾아…희귀품 수집 열풍
군대 용품 마니아들은 한발 더 나간다. 진짜 군대에서 쓰던 물품을 찾는다. 얼핏 봐선 낡은 군용품에 불과한 물건도 이들에겐 최고의 수집 대상이다.
그중에서도 베스트 상품은 야전상의. 평소에 재킷으로 입기도 한다. 미군 용품을 선호하는 이가 많은데 ‘M65’가 가장 잘 나간다. 가격은 시대나 제품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10만 원 선. 1970, 80년대의 야전상의는 유행을 타지 않는다.
독일 야전상의도 인기 있는 편이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제품은 희귀한 탓에 100만 원이 넘는데도 수집가의 타깃이 된다. 화려한 스타일이라 패션 용품으로도 각광 받는다.
군용가방은 밀리터리 마니아가 아닌 사람도 많이 쓴다. 튼튼한 데다 무게 분산이 잘돼 메기 편하다. 미군 제품이 주류지만 스위스나 스웨덴 군용가방도 사랑받는다. 20만, 30만 원대로 싼 편이 아니지만 등산용 등으로 즐겨 쓴다.
초보자로선 진품 여부를 구분하기가 몹시 어렵다. 인터넷에 풀린 상품은 중국산 ‘짝퉁’이 많다. 따라서 군대 용품을 구입할 때는 믿을 만한 전문가나 업소를 통하는 게 낫다. 서울 이태원시장 옆 골목의 ‘DMZ’는 군대 용품을 아는 이들에겐 익숙한 장소다. 사장인 윤현진 씨가 군대 용품의 매력에 흠뻑 빠진 애호가라 얘기만 들어도 재미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밀리터리 문화 파급 일등공신은 인터넷과 서바이벌 게임
마니아들 “이젠 당당한 레저”
‘밀리터리 문화’의 파급에는 인터넷의 영향이 컸다. 정보를 습득하는 창구가 외국 서적뿐이던 시절엔 일부만이 밀리터리 문화를 즐겼고, 그나마 질과 양 모두 떨어졌다.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 공유가 가능해지면서 군사전문가에 맞먹는 마니아층이 형성됐다.
밀리터리 문화라고 하면 국내에선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 강하다. 과거 군사문화의 잔재를 떠올리는 탓이다. 그러나 마니아들의 꾸준한 활동 덕분에 이미지는 많이 바뀌고 있다.
서바이벌 게임은 밀리터리 문화의 이미지를 바꾼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모형 총기를 들고 전투를 벌이는 게임은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다. 최근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야외 레포츠로 사랑받고 있다. 예비군 훈련에도 적용되면서 밀리터리 문화의 건강한 면이 재조명되는 계기가 됐다.
마니아들의 축적된 정보력은 시민운동을 벌이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요즘은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들이 밀리터리 마니아들에게 자문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마니아들이 참여하는 정책모임도 결성돼 활발히 활동 중이다.
군은 성격상 일반인과 단절된 폐쇄적인 성격이 강하다. 이런 여건에서 밀리터리 마니아의 활동은 군대문화의 긍정적인 면을 보여 주는 연결고리의 기능도 한다. 군 홍보에도 일조하는 셈이다.
외국의 밀리터리 문화는 사회적으로 오래전부터 하나의 당당한 레저문화로 인정받았다. 국내에서도 밀리터리 문화가 더는 음지의 문화로 취급받지 않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군사전문잡지 ‘디펜스타임즈’ 김재우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