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건축/알랭 드 보통 지음·정영목 옮김·304쪽·1만4000원·이레
20세기 초 스위스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집은 더위와 비, 호기심 많은 사람으로부터 지켜 주는 피난처라며 집의 기능을 강조했다. 그는 꾸밈과 장식을 거부하고 현대인이 원하는 것은 ‘수도사의 방’이라고 말했다. 유용하고 실용적이며 기능적인 것을 아름답게 바꾸는 작업이 건축이라고 말한 기존 건축가들의 철학에 반대한 것이다.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진 건축가들은 아무것도 지탱하지 않는 기둥이 잔뜩 들어간 건축물은 부도덕하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유명 에세이 작가 알랭 드 보통은 그래도 건축의 본질은 아름다움이며, 우리는 집이 우리를 보호해 주길 바랄 뿐 아니라 우리에게 말을 걸어 주길 바란다고 이야기한다. 건축이 달라지면 사람도 달라진다는 것. 작가는 건축 전문가는 아니지만 해박한 미술사 지식을 바탕으로 건축 미학사, 미학의 관점을 둘러싼 논쟁을 두루 살핀 뒤, 우아함 균형 질서 같은 건물의 미덕이 인간에게 어떤 심리적 영향을 미치는지 소개한다.
그저 건축 미학을 소개한 딱딱한 책은 아니다. 화자를 ‘나’로 내세운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에세이집이다. 건축물 하나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작업마저 작가의 경험과 주관을 거쳐 빙빙 돌아 나오다 보니 객관적이고 친절한 설명을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어려운 책이 될 수도 있다.
작가가 말하는 건축의 심리적 영향이란, 어찌 보면 누구나 이미 느끼고 있는 것들이다. 경북 영주시 부석사의 무량수전. 사뿐히 고개를 쳐든 추녀 곡선과 배흘림기둥의 조화는 목재가 빚어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이다. 무량수전 앞에서 느끼는 생각과 도시 한복판의 콘크리트 건물, 현란한 조명의 쇼핑몰에서 드는 생각이 당연히 같을 수 없다. 저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거리의 맥도널드 햄버거 웨스트민스터 지점의 강렬한 조명에서 느낀 불안감을 피해 웨스트민스터 성당으로 들어간다. 그는 성당의 느낌을 이렇게 표현한다.
“인간 본성의 진지한 모든 면을 표면으로 불러낸 것 같았다. 한계와 무한에 대한 생각들, 무력감과 숭고함에 대한 생각들, 이 석조 건물은 손상되고 무디어진 모든 것을 도드라지게 부각시키고, 완전함에 이르도록 살아 보고자 하는 갈망에 붙을 붙였다.”
책 곳곳에서 이처럼 섬세하고 철학적인 사유를 만날 수 있다. 원제 ‘The Architecture of Happiness’(2006년).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