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터넷 쇼핑몰의 ‘모텔 이용후기’ 게시판에 올라온 사진들.
[기획취재] 신세대 性의식 ②부-20대 여대생들의 당당한 성의식
캠퍼스와 그 주변은 성(性) 해방구
20대 대학생 커플들에게 캠퍼스와 그 주변은 성(性) 해방구다. 밤이면 교내 벤치나 풀밭에서 포옹을 하거나 진한 스킨십을 나누는 커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인적이 드문 잔디밭이나 계단, 강의실, 화장실에서 성 관계를 갖는 커플들도 있단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K대 심리학과의 한 강사는 “대학은 지성의 전당, 상아탑으로 대변된다. 캠퍼스가 지니는 그런 상징과 금기를 깨는 데서 학생들이 스릴감을 느끼는 것 같다. 자취방이나 모텔 같은 곳 말고 색다른 장소에서 관계를 갖고 싶어 하는 심리도 작용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학생 커플들이 즐겨 찾는 곳은 학교 주변 모텔. 수요를 충족하려는 듯 대학가 주변은 모텔로 넘쳐난다. 특히 서울 신촌이나 S대·E대·D대 등 여대 주변에는 모텔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S대 근처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L씨는 “금ㆍ토요일이면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커플로 빈 방이 없다. 1시간씩 기다리는 건 예사다. 평일에도 학생들이 많아 다른 지역보다 수입이 좋은 편”이라고 했다.
또 다른 업주는 “시험기간이면 다른 손님은 못 받는다. 집이 먼 대학생 커플들이 아예 방을 잡아놓고 잠자고 공부하며 학교를 오간다”고 말했다.
모텔 외에도 DVD방, 노래방 등도 커플들이 자주 애용하는 장소다. K대에서 만난 한 커플은 “둘이 있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다. 비디오방 같은 데는 모텔보다 싸기 때문에 자주 이용하는 편”이라고 했다.
20대 커플들은 자신들의 성 생활을 공개하는 데 거리낌 없다. 성 관계와 관련된 사항을 학교 홈페이지 Q&A란에 올려 경험을 공유하거나 모텔에서 찍은 낯 뜨거운 사진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다.
한 인터넷 쇼핑몰의 ‘모텔 이용후기’ 게시판에는 수천 개의 글과 사진이 올라있다. 모텔 욕실에서 샤워하거나 옷을 벗는 모습, 흐트러진 자세로 잠든 장면 등 자극적인 사진도 있다.
대학가에서 커플들의 동거는 보편화된 지 오래다. S대의 한 커플은 “동거를 하자고 해서 하는 게 아니에요. 각자 살다보면 어느 한쪽 집에 자주 놀러가게 되고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같이 살게 돼요”라고 했다.
이들은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이 ‘지방대에 갈 경우 내려갈 때는 한 몸이지만 상경할 때는 두 몸이 된다. 그러니 열심히 공부하라’고 했는데, 실제 그렇게 되더라”고도 했다.
“좋아하는 남자라면 성 관계 가질 수 있다”
20일 서울 종로의 한 호프집에서 K대·S대·D대에 다니는 4학년 여학생 6명을 만났다. 이들은 요즘 젊은 세대의 성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들 중 4명은 현재 남자친구와 사귀고 있다.
이들은 우선 “좋아하는 남자라면 얼마든지 성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마음에 드는 상대라면 ‘원나잇’도 괜찮아요. 다만 나는 떳떳한데 사회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 않아서 좀 스트레스를 받을 뿐이에요.”(박경미 씨)
“자기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면 괜찮은 것 아닌가요. 좋아하고 사랑했기 때문에 관계를 가진 거니까요.”(홍지원 씨)
“임신이나 성병에 대한 걱정이 있죠. 그래서 콘돔을 꼭 써요. 남자가 알아서 써야죠. 그냥 하자는 남자는 정말 여자를 배려하지 않는 나쁜 사람이죠.”(이진숙 씨)
“호감이 가는 상대라면 같이 살아보고 난 뒤에 결혼하는 게 좋지 않나요. 안 살아보고 바로 결혼하면 얼마나 싸우겠어요.”(김민희 씨)
“처녀성에 집착하는 남자들 이해 안 돼…”
S대에 재학 중인 박인희 씨는 재작년 여름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거기서 만난 외국 남성과 첫 관계를 가졌다.
“처음에는 성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관계를 갖고 나니까 섹스에 대한 억압과 구속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졌어요. 서로가 마음만 맞으면 같이 잘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박 씨는 지난해 귀국해 복학했다. 그는 지금의 남자친구와 사귀기 전에 몇 명의 남자와 만났다. 그 중 한 명과는 결혼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혼을 앞두고 남자의 요구로 성 관계를 가진 게 문제가 됐다.
“남자가 ‘처녀가 아닌 것 같다’며 헤어지자고 하더군요. 제가 처음이길 기대한 거죠. 참 어이가 없더군요. 솔직히 남자들이 여자보다 더하지 않나요. 거의 다 경험이 있잖아요.”
박 씨의 토로에 여대생들이 일제히 맞장구를 쳤다. 순간 인터뷰 자리는 여성해방론자들의 남성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왜 처녀가 아닌 게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어요. 성(性)이라는 건 자연스런 욕망 아닌가요. ‘처음’이라는 것에 얽매일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남자들은 왜 그렇게 의미를 크게 두는지 이해가 안 돼요.”
남미경 씨는 남자들의 이중성에 대해 비판했다.
“남자가 여자를 보는 시선은 이중적이에요. 성 경험이 있다고 하면 ‘너무 까지지 않았느냐’고 하고, 없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천연기념물이네’ 라는 식으로 비꼬죠. 한마디로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죠.”
“여자 중심의 사회라면 처녀성은 문제 안 돼”
이들의 냉소적인 반응은 남성중심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한국은 남성중심 사회이기 때문에 성에 대해 남자와 달리 여자에겐 너그럽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처녀막 재생수술 같은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고 성토했다.
“남녀가 사귀다가 헤어졌을 때 어떤가요. 남자에게는 관대하죠. 하지만 여자는 남자들의 술 안주거리가 되거나, ‘하자가 있네’ ‘신세 망쳤네’ 하는 식으로 비난받죠.”(박경미 씨)
“한국은 남자가 우위에 있으면서 여자를 선택하잖아요. 여자가 우위에 있다면 처녀니 아니니 이런 게 뭐가 문제가 되겠어요.”(박인희 씨)
한국 여성이 바라는 남성상이란?
여대생들은 2시간여 동안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거세게 20대의 성에 대해 토로했다. 인터뷰 말미에 한 여대생이 지금 자신과 사귀고 있는 이상형의 남자친구 얘기를 들려줬다.
“지금 남자친구 전에 남자를 몇 명 만났어요. 그런데 전에 사귀던 남자에게서 성병이 옮았어요. 나중에 보니까 그 애의 성생활이 문란했어요. 그래서 지금의 남자친구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한 뒤 ‘너도 성병이 옮았을 것’이라고 했어요. 남자친구가 ‘여자인 네가 약 사러 다니고 하면 그렇지 않겠느냐. 내가 사다주겠다’며 완치될 때까지 곁에서 지켜주더군요. 지금까지 잘 사귀고 있어요.”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