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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칼럼]또 노무현 판 대선도 괜찮다

입력 | 2007-05-21 19:20:00


노무현 사람들이 뭉쳐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그리도 잘못했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안희정 씨 등이 참여정부평가포럼이란 걸 만들어 전국을 누비며 자찬(自讚) 파티를 열건, 박정희 이후의 최고 정부라고 자랑하건 못 말린다. 노 대통령은 일찍이 임기 초반에 “나에 대한 평가는 내가 한다”고 못질한 바 있다.

설혹 노 대통령이 국민의 평가를 거부하더라도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이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합의를 이끌어 낸 리더십이다. 이 업적이 없었다면 대통령 사람들이 주장하는 ‘현 정부의 성과’는 거의가 사적(私的) 집단이기적 성과에 불과하다고 나는 본다. 권력의 전리품(戰利品)을 나눠 가진 그들만의 잔치를 국민 모두의 것인 양 선전하는 낯 두꺼움이 386 좌파세력답다고나 할까.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이병완 씨는 한술 더 떠서 “현 정부의 성과를 매도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들이댄다. 그야말로 ‘도둑이 매를 드는’ 격이다.

민생 현장엔 개인파산 신청자, 청년 백수, 그냥 노는 사람이 십만, 백만으로 넘쳐 나지만 이 정부에서 청와대 물 먹은 사람 중엔 월급을 고스란히 모은 돈보다도 재산을 많이 불린 재테크 달인이 적지 않다. 4, 5년 전만 해도 소득세 한 푼 내 본 적 없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열창한 덕에 갑자기 검은색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 국정을 주무르게 된 주사파도 정치권과 관변에 퍼져 있다.

유권자들 선택의 反面교사 자청

집권의 수혜층은 살펴볼수록 두껍다. 보통 국민은 듣도 보도 못한 위원회의 책임 안 지는 회전의자, 혁신 세미나를 한다며 기관 예산(결국 국민 부담)으로 2만 km나 떨어진 남미 이구아수 폭포로 날아간 공기업 감사, 심지어 민간기업에 내려앉은 낙하산도 빙산의 일각이다. 문화계와 언론 주변 단체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보호막 속에서 벌어지는 ‘내 편끼리 세금 퍼 쓰기’ 잔치판은 구형 정경유착보다 더 반(反)국민적인 데가 있다. 지난 대선에서 도덕성(道德性)을 앞세워 집권한 이른바 민주화세력의 이런 풍경을 보면서, 도대체 누가 국민을 우롱하는지 되묻게 된다.

100년 갈 거라고 호언하며 쪼갠 여당을 겨우 3년 남짓에 해체하고 다시 이합집산해야 할 처지가 됐다. 이것이야말로 정권의 실패를 웅변한다. 이런 판에 정색을 하고 “우리가 무얼 잘못했느냐”고 대드는 것은 민심(民心)에 대한 모독이다.

하기야 노(盧) 직계 세력이 대선 정국의 한복판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유권자들에게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4·25 재·보선 때 보았듯이 많은 국민은 현 정권이 조용히 있기만 하면 그냥 잊어버리고 싶어한다. 잘잘못을 시시비비하기도 싫은 것이다. 그런 참에 참평포럼 세력이 참여정부 실패론을 강하게 반박하고 나옴으로써 시비가 다시 일게 된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12월 대선 이전에 노 정권에 대한 평가를 다각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노 정권은 김대중 정권과 닮은 데도 있지만 또 다른 정치실험을 해 온 주체다. 이들은 어떤 집단적 정체성(正體性)과 역사관(歷史觀)을 갖고 국가와 국민을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가려 했으며, 그 결과는 실제로 어떤가. 이 물음에 대해 다수 국민이 공인할 만한 답을 찾아낸다면 유권자들이 차기 정부를 선택하는 데 좋은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노 정권을 경험하면서 국민이 체득한 학습효과가 새 대통령 선택 과정에 좀 단순하게라도 나타난다면 5년의 학습비용이 덜 아까울 것이다. 요컨대 충동구매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가 하지 않을 일’ 公約경쟁을

그러자면 유권자들은 ‘7% 성장, 일자리 250만 개 창출, 고르게 잘사는 사회, 복지(福祉) 천국 건설’ 같은 공약(公約)의 무책임성도 간파해야 한다. 어떤 후보(주자)가 이번에도 ‘생산성 낮은 큰 정부’를 만들어 국민 부담을 키우고 민간 발전을 가로막을지 ‘장밋빛 공약’의 인과(因果)를 잘 따져 봐야 한다. 무엇이든 다 하겠다는 정부가 아니라 ‘하지 않을 일’을 분명히 밝히고 지키는 정부가 경제와 민생을 살려 낸다는 사실을 잘나가는 나라들이 증명하고 있고, 그 역(逆)을 노 정권이 확인시켰다. 그래서 ‘정부가 반드시 손 뗄 일’에 관한 각 주자의 공약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