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든 브라운 영국 재무장관의 미소는 그의 용모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마치 파티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 같다.
대중에게 어필하는 ‘연예계 대장’ 토니 블레어 총리와 비교해 볼 때 목사의 아들인 그는 차라리 금욕적으로 보인다. 유럽 정치 무대에서 ‘철의 여인’ 앙겔라 메르켈이나 ‘남자 옷을 입은 대처’로 불리는 니콜라 사르코지와 앞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어려움을 겪을 듯하다.
그는 재무 관료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파스텔톤의 넥타이를 맸고 여성지 인터뷰에서 록밴드 ‘아크틱 몽키스’를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크틱 몽키스가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는 대지 못했다.
샴페인과 명사가 넘쳐나던 ‘쿨한 영국(Cool Britannia·블레어 총리 집권 당시 노동당의 구호)’ 팀에서 그는 ‘쿨하지 않은’ 일원으로 취급되곤 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상대역을 맡아온 블레어 총리도 쿨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베이비 붐 시대의 첫 총리였던 블레어 총리는 영국을 한층 현대적이고 관용적인 국가로 만들겠다며 빛나는 출발을 했다. 그러나 그는 현대성과 관용의 시계를 뒤로 돌려놓는 미국 인물들과 의기투합했고 영국인이 가진 특유의 신뢰를 오남용했다.
13년 전 블레어에게 총리 자리를 양보할 때 브라운은 블레어가 결국은 자신에게 권력을 넘길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자신이 지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했지만 미디어를 다루는 기술이 나아져야 한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이 같은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가 미디어에 처음 등장할 때 그것은 BBC 말마따나 ‘약간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사우스게이트에 사는 그의 지지자가 보도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기 집에서 브라운에게 아침을 대접하는 자리였다. 브라운 장관이 도착한 뒤에도 문은 한동안 굳게 닫혀 있었다. 카메라가 비추는 가운데 그는 초인종을 눌러야 했다. 그가 연설을 하는 동안 프롬프터(원고를 비추는 기계)가 그의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날 최대의 사건은 블레어 총리가 이 시간에 맞춰 축구 스타의 조각상을 제막하는 행사를 가진 것이었다. 뉴스 채널들은 브라운의 연설 시간을 반분해 한쪽은 블레어가 참석한 제막식을 중계했다. 이 장면은 (비틀스 멤버인)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의 깨진 파트너십을 떠올리게 했다.
한때 브라운은 블레어를 경멸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포장술이 정책을 대신할 수는 없다” “정치가 명사(名士)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신뢰를 다시 구축하기 위해 의회에서 노동당의 힘을 회복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라크 침공 과정에서 블레어 총리가 여론을 무시한 것에 한 방 먹이는 말이었다. 그는 또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는 데 더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블레어 총리는 최근 방어적이면서도 도전적인 사임 연설을 했다. ‘무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 공들인 연설이었다. 이 연설은 그가 가져온 혼란의 시대에 커다란 비판의 회오리를 불러왔다. 블레어 총리는 예전에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지녔다고 언급해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으며 이 같은 언변으로 세 번이나 선거에서 이겼다.
시사평론가들은 브라운에게도 꾀가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만약 그가 앞으로 ‘프롬프터’를 옆으로 걷어치우지 못한다면 ‘가벼운 블레어’라는 말을 듣는 젊은 보수당수 데이비드 캐머런과 어떻게 맞설 수 있을 것인가. ―런던에서
모린 다우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