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품도 사고팔며 서로 사이좋게 지내기로 한 약속.’
이름도 거창했다.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
1882년 5월 22일 조선이 서양 국가와 맺은 첫 협약. 조선으로선 격랑의 국제무대에 본격적으로 나선 데뷔전이다. 주권국가로서 체결한 최초의 쌍무관계라는 평가도 있다. 일본과의 강화도조약은 함포의 무력에 굴복한 불평등조약이니 정당한 조약은 처음이라는 셈법이다.
조선은 초기부터 미국에 호의적이었다. ‘고괴(古怪)한 모습’(일성록)을 겁내면서도 정성껏 대접했다. 이양선이 나타나면 ‘며리계(-里界·아메리카의 한자 발음)’를 연호했다. “부(富)가 6주에서 으뜸이면서도 가장 공평한 나라”(박규수)로 인식했다.
신미양요를 겪고도 믿음은 굳건했다. 대원군은 ‘그 나물에 그 밥’으로 보고 척화비를 세웠으나 고종은 달랐다. “영토 욕심이 없는 나라”라며 양대인(洋大人)이라 존칭했다. 조약 체결 뒤에도 금광 철도 등 알짜 이권을 듬뿍 안겼다.
미리견국(彌利堅國)의 선한 이미지는 중국의 영향이 컸다. “부강하되 소국을 능멸하지 않는다”(해국도지)라고 칭찬했다. 동아시아 맹주의 헛기침이 물거품처럼 사그라지던 청(淸). 미국은 일본을 누르고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매력적인 파트너였다.
조약 체결에도 청이 앞장섰다. 고종 역시 전권을 위임했다. ‘조선은 청의 속국’이란 조항 삽입도 내걸었다. 미국은 반대했으나 오히려 조선이 청의 편을 들어줬다. 수륙무역장정이란 별도 조회문에 속국임을 천명했다.
주인답지 못했던 조선. 당당하지 않았으나 속내는 있었다. 이이제이(以夷制夷). 1조로 올린 문구가 ‘제3국에 업신여김을 당하면 서로 돕는다’는 약속이었다. 미국이 한 귀퉁이를 점하면 추의 균형이 맞춰지리라…. 제로섬 게임의 안쓰러운 한 수였다.
시도는 좋았으나 전제를 간과했다. 판을 짜는 건 불량 이웃의 몫이었다. 조선은 노림수는 될지언정 대마(大馬)는 아니었다.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을. 1905년 ‘가쓰라-태프트밀약’이 맺어졌다. 미국의 배신? 무력은커녕 정보력도 모자랐다. ‘아름다운 나라(美國)’는 태평양 건너 무지개 너머에만 존재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