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없는 사무실이 탄생할 것이다.”
빌 게이츠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은 1999년에 펴낸 저서 ‘생각의 속도’에서 종이의 종말을 예언했다. 그는 컴퓨터로 문서를 만들고 사내(社內) 전산망이나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유통하게 되면 종이의 쓰임새가 줄어들거나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8년이 지났지만 종이 수요는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복사용지, 물건 포장용지의 수요가 늘어난 데다 비데 전용 화장지, 자동차 부품 등 신규 수요도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22일 한국제지공업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종이 소비량은 865만 t으로 전년보다 3.5% 증가했다. 국내 종이 생산량도 1070만 t으로 2005년에 비해 약 1.5% 늘었다.
○ 늘어나는 종이 수요
한국제지는 지난해 울산공장을 증설했다. 늘어난 생산량(17만 t)의 70.6%인 12만 t이 복사용지다.
이 회사 관계자는 “사무실과 가정에서 프린터 사용이 늘어나면서 복사용지의 수요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며 “올해 복사용지 판매량이 지난해의 두 배로 늘었다”고 말했다.
홈쇼핑, 인터넷 쇼핑몰 등 방송과 통신 기술을 이용한 서비스업도 종이 시장을 키우고 있다.
전화나 인터넷으로 상품을 주문받아 배달하는 물량이 늘어나면서 물건 포장에 쓰이는 골판지 소비량도 뛰기 시작한 것이다. 골판지는 국내 종이 소비량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지난해 국내 골판지 소비량은 전년보다 4% 증가했다. 아세아제지의 경우 골판지 원재료로 쓰이는 골판지 원지 생산량이 2004년 27만9000t, 2005년 29만2000t, 2006년 31만4000t으로 늘었다.
용변을 본 뒤에 물로 깔끔하게 뒤처리를 할 수 있는 비데가 보급되면서 화장실에서 휴지가 사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비데는 ‘물에 젖어도 잘 찢어지지 않는 고급 화장지’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다. 이 고급 화장지는 일반 제품보다 가격이 30% 정도 비싸다.
대한펄프 관계자는 “비데를 쓰면 물기를 없애기 위해 오히려 화장지를 더 많이 쓰게 된다는 점에 착안해 2004년 비데 전용 화장지 ‘비데후엔’을 내 놨다”며 “이 상품의 매출이 매년 20∼30%씩 늘고 있다”고 말했다.
○ 기술과 종이의 만남…새로운 시장이 열린다
제지업계 관계자들은 “기술의 발달로 종이가 대체되기도 하지만 뜻밖의 곳에서 새로운 수요가 생겨나고 있다”며 “종이의 소멸을 거론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말한다.
특히 경제가 성장할수록 종이의 쓰임새는 더욱 늘어난다는 전망이 많다. 우리나라의 1인당 종이 소비량은 세계 25위로 고급화되고 다양화된 시장이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원종명 강원대 제지공학과 교수는 “자동차의 오일 필터나 에어컨의 필터는 물론 자동차 천장에도 흡음과 완충을 위해 가공된 종이가 쓰인다”며 “선진국일수록 문화 활동이 많고, 광고 마케팅도 활발하기 때문에 종이 사용량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