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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67년 美M-16 소총 결함 논란

입력 | 2007-05-23 03:00:00


“전투에 나갈 때 우리 대대는 1400명이었지만 돌아올 땐 절반밖에 안 됐다. 우리 중대 250명 중 107명만 제대로 돌아왔다. 사상자는 한결같이 고장 난 소총과 함께 발견됐다.”

1967년 5월 23일, 제임스 하워드 미국 하원의원은 베트남 케산 지역에서 벌어진 881고지 전투의 참상을 알리는 한 통의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881고지 전투에 투입됐던 한 해병대원이 부모에게 “미군이 승리했다는 신문 보도는 믿지 말라”며 보낸 편지였다.

편지에 거론된 고장 난 소총은 M-16. 사상자 대부분이 M-16의 결함과 고장 탓이었다는 주장은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많은 병사가 고장 난 소총을 고치려 꽂을대를 총구에 쑤셔 넣는 자세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M-16은 그해 초 베트남 파견부대에 새로 보급된 표준형 자동소총. 기존 M-14에 비해 길이가 짧고 반동이 적어 정글전투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아 지급된 M-16 소총이 ‘사람 잡는 애물단지’로 돌변했다는 것이다.

의회의 진상조사 결과 이미 대량생산에 들어간 M-16 소총의 여러 기술적 결함이 드러났고 결국 국방부는 8월 M-16 소총의 기능 불량 증가율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M-16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총구와 약실이 쉽게 부식되는 데다 발사 때 나오는 가스 그을음이 노리쇠와 약실에 쌓이면서 작동 불량에 빠지기 일쑤였다. 특히 M-16은 청소가 필요 없다는 제작업체 콜트사의 과장 선전도 한몫했다.

이런 기술적 결함이 시정된 뒤에야 M-16은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 무기로 꼽히는 AK-47에 맞서는 자동소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오늘날까지 전 세계적으로 생산된 M-16 소총은 대략 800만 정. 이 중 90%가 아직도 사용 중이다.

최근 이라크 주둔 미군은 이라크군 신병들을 M-16으로 무장시켜 조만간 실전에 배치할 계획이다. 이라크는 사담 후세인 정권 몰락 후 약탈당하거나 밀수입된 AK-47로 넘쳐 나는 곳. 조만간 AK-47 대 M-16의 정면승부를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한편 미군 내에선 이라크전쟁을 계기로 사막의 모래나 먼지에 취약한 M-16 대신 새로운 차세대 소총을 채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보도다. 하긴 베트남 이후 30년 만의 지상 게릴라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미군으로선 소총 탓이라도 해야 할 형편이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