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원권에는 세종대왕의 초상이 들어 있다. 지폐에 초상이 그려진 임금은 세종대왕이 유일하다. 이상적인 유교정치의 구현을 꿈꾼 세종은 집현전을 설치하고 한글을 창제했으며 실록 보관을 위해 4대 사고(史庫)를 설치한 명군(名君)이었다. 세종은 또 장영실을 등용해 측우기 해시계 물시계를 만들었다. 측우기는 세계 최초의 발명품으로 당시 조선의 과학기술 수준을 보여 준다.
▷세종대왕이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다 보니 ‘세종’이란 호칭도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가 됐다. 법무법인, 호텔, 해군 함정, 기업체, 사설학원 등 곳곳에 세종이란 이름이 쓰인다. 서울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에서 남쪽으로 시원스레 뚫린 길이 500m, 폭 100m의 도로도 세종로다.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상징하는 중심 도로다. 도로 우측의 세종문화회관은 1978년 개관 이후 한국 문화예술의 중심 무대다. 멀리 떨어진 남극 과학기지의 이름도 세종기지다.
▷세종이라는 이름 아래 논란이 빚어진 일도 있다. 한때 5공 비리의 대표적 산물로 꼽혔던 일해재단은 세종연구소의 전신이다. 일해(日海)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로 재단 기금과 자산의 출연 과정에 강제성이 확인됐다. 5공 청산 과정에서 일해재단의 재산은 대부분 국고에 귀속되고 연구 기능만 세종연구소가 물려받았다. 세종대는 수도여자사범대학에서 남녀공학으로 바뀌면서 세종의 이름을 빌렸다. 좋은 이름에도 불구하고 학내 분규가 빚어져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되는 형편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도시)의 이름이 ‘세종특별자치시’로 결정돼 입법예고됐다. 수도 분할의 이론적 근거인 국토균형개발 전략에 대한 반론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아직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수도 이전 계획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받자 규모를 약간 축소해 이전하기로 한 게 행복도시다. 태조 이성계는 무학대사와 함께 북한산과 한강의 배산임수(背山臨水)를 갖춘 한양에 도읍을 정했다. 세종은 수도 기능을 분할해 건설한 행복도시에 자신의 이름이 붙는 것을 조부(祖父)에게 민망해할지도 모르겠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