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그제 청와대에서 열린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 이달 말 개시할 예정이던 40만 t의 대북 식량지원을 북이 2·13 합의 이행에 나설 때까지 미루기로 했다. 바른 조치다. 북에 못 퍼 줘 안달하던 정부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북이 6자회담 합의를 안 지키는데도 지원부터 할 경우 터져 나올 국내외의 비판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딱한 것은 북한 주민이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여성과 아동 등 지원이 절실한 북한 주민 70만 명 가운데 40만 명에 대한 배급을 6월부터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북의 핵실험으로 국제 여론이 악화돼 올해부터 2년 동안 지원하는 데 필요한 1억200만 달러 중 2320만 달러(22.7%)밖에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의 경우 북 주민의 12%가 굶주렸다고 국제사면위원회는 밝혔다.
이들의 비참한 삶은 “핵만 포기하면 모든 지원을 하겠다”는 한국과 국제사회의 제안을 외면한 채 핵을 끌어안고 버티는 김정일 정권에 책임이 있다. 국제적 지원이 끊어져도 김정일과 그의 충복들은 고급 외제차를 타고, 철갑상어알에 비싼 와인을 마시는 데 불편함이 없을 것이다. 2·13합의 후 100일이 지났는데도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예치된 2500만 달러가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초기조치를 이행하지 않고 버티는 것도 호화 생활에 필요한 돈을 빨리 돌려달라는 재촉이다.
이런 판에 남한의 전직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채근하고 이른바 범(汎)여권 대선주자라는 사람들은 북으로 달려가 ‘의전용 2인자’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기념사진 찍기에 바쁘다. 이들 중 누구도 북의 핵과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정색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른바 햇볕정책이 부정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북핵을 머리에 이고서라도 남북 평화 무드를 조성해 대선 국면을 뒤집어 보려는 범여권 주자들이나 북한 주민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다. 북의 김정일 정권이나 남의 여권이나 민족과 평화를 입에 올릴 자격이 있는가. 굶어 죽는 북한 주민은 민족이 아니고, 저들의 지옥도 평화 세상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