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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로즈호, 탈출 못한 선원들… 커져가는 의혹들

입력 | 2007-05-25 15:43:00

골든로즈호 수색 장면.

골든로즈호와 충돌 후 다롄 다야오완(大窯灣) 컨테이너 부두로 들어와 정박 중인 중국 컨테이너선 진성호.


지난 12일 새벽 침몰한 골든로즈호(3849t) 선원들의 시신이 인양되면서 새로운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진성(金盛ㆍ4822t)호에 대한 조사를 벌였지만 결과 발표를 미루고 있어 의문은 점점 커지고 있다.

◇왜 선원들은 배에서 탈출하지 못했나

우선 선원들의 시신이 선실에서만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다. 선원들이 왜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선실에서 사고를 당했느냐는 것.

침몰 10일이 경과된 22일 오전. 수심 38m 깊이에 가라앉아 있는 골든로즈호의 조타실 아래층 선장 침실에서 선장 허용윤(58) 씨의 시신이 발견 인양됐다. 이날 선미 갑판의 기관장 침실 부근에서도 실종자 시신 1구가 추가로 발견됐다. 하루 전인 21일에는 미얀마인 3등 항해사 틴 아웅 헤인(26) 씨의 시신이 조타실 아래층 3등 항해사 침실 앞 복도에서 인양됐다. 모두 선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다.

해군에서 군복무를 한 회사원 조해영(32) 씨는 “선장 침실은 조타실 바로 아래층에 있어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조타실로 가서 배를 통제한다”며 “다른 선원은 몰라도 선장의 시신이 침실에서 발견된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선장이 조타실까지 이동할 만큼의 짧은 시간이 없을 정도로 상황이 급박했거나, 아니면 어떤 물리적인 힘에 의해 침실에 갇혀 못나온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경력 12년의 한 전직 선장은 “시간이 지나면 배의 외부에서도 선원들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겠는가”라면서도 “선원들이 전부 선실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죽었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정도 크기의 배라면 아무리 빨리 침몰해도 최소한 몇 분은 걸린다고 봐야한다”고 덧붙였다.

◇누리꾼들 “해상강도 당했나?” 갖가지 의혹 제기

인터넷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간 의혹들이 나돌고 있다. ‘해상강도를 당한 것 아닌가’, ‘사고 후 조타실을 점령당했던 게 아닌가’라는 의견이다.

“여러 개의 긴급구조장비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충돌 뒤 누가 배 위에 올라탔고, 장비 작동을 봉쇄한 것이 틀림없다.”(네이버 uk8077), “혹시 해적 아니야? 들이받고 귀중품 약탈…,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다.”(tomatoeic), “왜 우리선원들은 한사람도 탈출을 못했지…?”(i8785)

◇조난신호장치는 왜 작동하지 않았는가

골든로즈호는 왜 단말마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물속으로 사라졌는가 하는 점도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3849t인 골든로즈호에는 조난위치 자동발신장치(EPIRB)와 무선조난신호기(DSC) 음성전파무선통신 등 3가지 조난신호체계가 갖춰져 있다. 항공기의 블랙박스에 해당하는 EPIRB는 침수 시 자동으로 선체에서 이탈돼 수일간 조난 신호를 보내도록 돼 있다. 하지만 그날 새벽에는 3가지 모두 작동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짙은 새벽 어두운 해상에서 사고를 당할 경우 선원이 사고 사실을 알릴 수 없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조난신호체계가 동시에 기능을 잃은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진성호 사고발생 후 12시간 동안 어디서 뭐했나

이밖에 진성호를 둘러싼 궁금증도 풀리지 않고 있다.

사고발생시간인 12일 새벽 3시8분부터 다롄항에 입항한 이후 오후 2시50분까지 12시간 동안 진성호의 행적이 묘연하다. 사고지점은 다롄항으로부터 38마일 지점으로 통상 3~4시간 걸린다. 결국 진성호가 8~9시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행적이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

진성호는 골든로즈호와 충돌한 뒤 왜 아무런 구조조치나 수색, 구조요청 없이 현장을 떠났을까. 이 배 선원들은 “가벼운 접촉사고 정도인줄 알고 현장을 떠났고, 입항 후에야 충돌사실을 알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배가 침몰할 정도의 큰 충돌을 몰랐다는 점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하고 있다.

◇전문가들 “우리가 생각지 못하는 상황 있을 수도”

전문가들은 일련의 의혹들과 관련해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한국해양대학 김정만 교수는 “배의 엔진룸 부분을 받쳤고 선체가 찢어져 물이 순식간에 들어온다면 엔진이 멈추고 전원이 꺼진다”며 “이런 경우 비상등이 켜지지만 불빛이 밝지 않아 선원들이 탈출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사고 난 배를 보지 못해서 정확하게 말하긴 힘들지만, 풀리지 않는 여러 가지 의혹으로 볼 때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어떤 상황이 있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같은 대학 지상원 교수도 “무거운 코일을 실었을 경우 화물창이 많이 빈다”며 “비어있는 곳의 선체가 파손돼 물이 순식간에 유입됐거나, 옆구리를 받혀 배가 넘어지면서 급속히 침몰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 교수는 타이타닉호의 침몰을 예로 들며 “아무리 빨리 침몰해도 통상적으로 볼 때 최소 몇 분은 걸린다고 봐야 한다”며 “선원들이 탈출하거나 선장이 조타실로 이동할 정도의 시간이 없었다는 점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