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 불량성 빈혈을 앓고 있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있는 한근영 양. 수원=신원건 기자
경기 수원시에 사는 일곱 살 근영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자주 넘어졌다. 몸에 멍이 들거나 살갗이 찢어지기 일쑤였지만 활발한 성격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골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근영이는 산소가 부족한 고산 지대를 걷는 것 같은 고통 속에 살고 있었다.
재생 불량성 빈혈. 초등학교 1학년 때 내려진 진단이었다. 적혈구는 물론 백혈구, 혈소판 재생이 안 돼 저항력이 떨어지고 출혈이 생기는 병이다. 의사는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고 했지만 한근영(17) 양은 10년째 투병하고 있다.
주치의인 성 빈센트병원의 김정아(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오랜 수혈과 합병증으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를 정도로 심각한 상태”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 양은 계속 공부를 했다. 중학교 때는 “네 입에선 (피) 비린내가 난다”는 친구들의 냉대를 이기며 통학까지 했다. 지금은 인터넷 강의로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패션잡지를 보려고 일본어까지 배웠다. 집에 있는 관절인형에 옷을 만들어 입히며 꿈을 키웠다. 앉아있기도 힘든 한 양에게 바느질은 한참 걸리는 작업이다. 한두 시간 하다 보면 지쳐 잠이 든다. 그런 그에게 가족은 ‘늘보’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를 좋아해요. 옷을 만드는 것도 좋아하고…. 꼭 나아 대학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고 싶어요.”
나을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0년 동안 5명의 골수 기증자가 나타났다. 하지만 이식 전 검사를 하는 도중 기증자들이 모두 마음을 바꿨다.
시간이 지나며 아버지 한복성(53) 씨는 닭 1만 마리, 돼지 1000마리를 키우던 농장을 처분해야 했다. 수원 지동의 집도 경매로 넘어갔다. 한 씨 부부는 인근 군부대의 음식물 찌꺼기를 수거하는 일과 양로원 레크리에이션 강사 일로 버는 월 250만여 원을 딸에게 쏟아 붓고 있다.
최근 한 양 가족에게 행복한 소식이 전해졌다. 딱 맞는 골수를 구했기 때문. 하지만 한 씨는 1억 원이 넘는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한 씨는 “근영이의 꿈을 이루게 하는 것 외에는 더 바랄게 없다”고 호소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