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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83년 국무총리 집무실, 종합청사 이전

입력 | 2007-05-28 03:05:00


왕조시대가 끝난 지 오래지만 대통령이 사는 청와대는 여전히 궁궐에 비유되곤 한다.

특히 대통령이 민의(民意)에 반하는 결정을 고집할 때 더욱 그렇다. ‘구중궁궐에 갇혀 있다’느니 ‘대통령(임금)의 눈귀를 가리는 가신이 누구냐’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래서 탈(脫)권위적, 민주적 지도자를 자처하는 대통령들은 당선 직후 또는 취임 초기 ‘구중심처 청와대’를 벗어날 궁리를 많이 하곤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심을 살피고 현장의 공무원과 호흡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로 서울 종로구 정부중앙청사에 별도의 집무실을 만드는 방안을 구상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비슷한 문제를 검토한 적이 있다.

그러나 실현되지는 않았다. 예산 낭비, 경호의 어려움과 함께 거론되는 대표적 반대 논리가 국무총리의 위상 저하 문제다. 총리의 ‘만인지상(萬人之上) 권위’보다 ‘일인지하(一人之下) 현실’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는 우려였다.

정말 이 문제가 그토록 심각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이유를 위한 이유’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대통령의 구중궁궐 탈출을 방해해 온 국무총리 집무실이 이제는 헐려서 없어진 옛 중앙청 3층에서 지금의 정부중앙청사 9층으로 이전한 때가 1983년 5월 28일이다.

이는 경복궁 복원 계획의 하나로 이뤄진 것이지만 ‘궁궐’ 안에 있던 총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는 정치적 함의도 있었다. 특히 당시 총리였던 김상협 전 고려대 총장은 대표적인 민심 수습용 총리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의 취임사 중 “우리 사회에 막힌 곳이 있다면 뚫어 주고, 맺힌 데가 있다면 풀어 주겠다”는 표현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며 세간에 오랫동안 회자됐다.

그러나 권위주의 군사정부 아래에서 총리의 권한과 역할은 뚜렷한 한계가 있었다. 1980년대 중반 국무총리 정무비서관(1급)을 지낸 이재원 씨는 저서 ‘한국의 국무총리 연구’에서 “(낡은) 총리실 집기조차 어느 총리도 건드리기를 꺼려했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총리가 ‘현상 유지’를 최선책으로 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 정부의 총리들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혹시 청와대가 만들어 놓은 ‘현상’을 ‘유지’하는 것을 최선책으로 삼아 오지는 않았을까. 언론의 자유와 민의의 소리를 거스르면서도 밀어붙이는 요즘의 ‘기자실 통폐합 조치’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