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후보들 서류 접수 12월 치러질 제17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 등록 첫날인 지난달 23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예비 후보들이 서류를 제출하고 있다. 예비 후보 등록제가 이번 대선에 처음 도입되면서 정치를 꿈꾸는 보통 사람들이 대거 등록하고 있다. 11월 24일까지 40세 이상 국민이면 누구나 예비후보로 등록할 수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27일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한 사람은 43명이나 된다. 등록을 시작한 지 한 달여 만이다.
등록한 예비후보 대부분은 정치와 거리가 먼 일반인들이다. 그나마 이름을 들어 알 만한 정치인으로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은 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의원 등 4명뿐이다.
각 당의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했거나 대선 잠재주자로 정치권 안팎에서 자천 타천 거론되는 한나라당의 박근혜 홍준표 원희룡 고진화 의원, 비한나라당의 정동영 김근태 이해찬 한명숙 김혁규 김원웅 유시민 조순형 천정배 손학규 정세균 강금실 신기남 김한길 심대평 박상천 추미애 김두관 문국현 박해춘 박원순 최열 씨 등은 예비후보로 등록하지 않았다.
대선후보 등록이 시작되는 11월 25일 하루 전까지는 예비후보로 등록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출마 여부와 관계없이 이름을 알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등록이 앞으로도 계속 늘어나 예비후보 등록자가 1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전망했다.
예비등록자 후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양한 인간 군상의 축소판을 방불케 한다. 초등학교 학력의 종교인부터 교수 출신까지 나이와 학력, 직업 등이 제각각이다. 고학력의 사업가와 교수도 있지만 무직자도 4명이나 된다. 작가도 있고, 농부도 있고, 청소부도 있다.
예비후보들의 대거 등장은 올해 처음 도입된 예비후보자 등록제 때문이다. 40세 이상이면 누구나 돈 한 푼 안 들이고 예비후보로 등록할 수 있다. 예비후보 등록을 하면 본인과 배우자는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간판이나 현수막을 1개씩 게시한 선거사무소도 설치할 수 있고 10명 이내의 상근 선거운동원도 둘 수 있다. e메일을 이용해 유권자에게 문자 음성 동영상을 보내는 등의 선거운동도 가능하다.
대선후보로 출마하려면 기탁금 5억 원을 내야 하기 때문에 예비후보 등록자들 중 상당수는 결국 출마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예비후보 등록자 중에는 진짜 출마할 뜻이 있다기보다는 이름을 알리려는 사람이 많은 게 사실이다”면서 “이런 예비후보 등록자들에게 일일이 선거법상의 선거운동 방법을 알려 주고 잠재 후보로 대접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43명의 예비후보 등록자 중 대부분은 전혀 선거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언론사도 여론조사 지지율 등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 보도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일반인들의 사연을 들어 봤다.
▼청소원… 농부… 청원경찰… “나도 한번…”▼
○ 어릴 적부터 간직한 꿈
회사원 조계덕(47) 씨는 대선 후보로 등록하자 아내가 “또라이 남편”이라고 비꼬았다. 그러나 그는 아내에게 “정상적인 사람들이 이 모양으로 정치를 하니 ‘또라이’가 한번 제대로 해 보겠다”고 주장했다. 컴퓨터프로그래머 출신인 조 씨는 “대통령 피선거권은 헌법에도 보장된 권리 아니냐”고 덧붙였다.
충북 음성군에서 고추농사를 짓고 있는 박노일(52) 씨 역시 “나도 보통사람이고, 대통령도 보통사람인데 나라고 못 할 게 뭐냐”고 반문했다.
삼성생명 본부장까지 지낸 조화훈(55) 씨도 정치 한 번 해 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조 씨는 “대기업 근무도 해 봤고 사업해서 큰돈도 벌어 봤는데 항상 뭔가 허전했다”고 말했다. 이런 조 씨를 이해하지 못했던 아내와는 3년 전 17대 총선 때 갈라섰다. 조 씨는 “총선 후보로 등록해 공약을 준비하다 보니 지방자치단체장으로는 한계가 많을 것 같아 출마를 포기하고 대선을 준비했다”며 “경제를 발목 잡지 않는 정치를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젊었을 때부터 정치판을 기웃거리다 대선 예비주자로 등록한 이도 있다. 직업을 종교인이라고 밝힌 최상면(52) 씨는 20대 때부터 정당 활동을 하며 정치전문대학원까지 마쳤다. 의욕이 대단한 그는 이번에도 등록 첫날, 그것도 첫 번째로 등록을 마쳤다.
○ “직업 정치인 못 믿겠다”
사업가 심만구(59) 씨는 기성 정치인들이 못 미더워 출마를 결심했다고 주장했다. 30여 년간 건축자재 도소매업을 하며 친환경 건축자재 발명 특허도 갖고 있는 심 씨는 특허 등록을 하기까지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한계를 절감했다는 것.
그는 “환경부에선 과학기술부로 가라, 과기부는 산업자원부로 가라, 산자부는 건설교통부로 가 보라며 여러 부처를 전전하게 했다. 뒷짐만 지는 공무원들을 보면서 우리가 국제 경쟁력에서 밀리는 이유를 알았다”며 “기술 천시 문화를 바꿔 보고 싶다”고 했다.
서울의 모 구청에서 청원경찰로 일하는 전기동(52) 씨는 “몸은 비록 지자체에 있지만 국정에 항상 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주변의 수많은 강대국 사이에서, 남북으로 갈라져 있다. 통일국가가 되는 데 주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성직자들도 가세했다. 목사인 장기만(54) 씨는 “성경대로만 하면 살기 좋은 나라가 된다”는 주장을 펼쳤고 승려인 이진석(54) 씨는 “문화 콘텐츠 역량을 강화해 대한민국의 빚을 해결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여성 대통령 후보들
여섯 명의 여성 후보 중 한 명인 민말순(60) 씨는 경기 안양시의 우체국에서 청소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아침부터 하루 종일 쓸고 닦아 한 달에 80만 원을 받는다. 5년 동안 10원 한 푼 안 올랐다. 그런데 공무원들을 보면 배고픈 사람 심정 모르고 주머니 벌려 자기 욕심만 챙긴다. 청소부 출신으로 대통령이 되면 일도 안 하고 노는 사람들을 싹싹 쓸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당선 가능성을 묻자 그는 갑자기 “솔직히 우리 집 개가 들어도 웃지. 청소부가 대통령이 되겠다는데 다들 웃지. 그래도 웃음거리 한 번 돼 보자,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논픽션 작가인 이나경(41) 씨도 등록을 마쳤다. 이 씨는 “유능하다는 분들이 보여 준 게 서로 헐뜯고 싸움질하는 거밖에 더 있느냐”며 “정치인들은 국민 눈치도 안 보고 뻔뻔하게 싸우고, 국민은 당연한 듯 그 싸움판을 보고 있다”고 한탄했다.
남편 서경석(42) 씨도 이런 아내의 생각을 지지한다. 서 씨는 “화려한 경력과 정치 활동이 대통령의 자질 기준은 아니다”라며 “사회 문제를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 내는 데는 아내가 적임자”라고 치켜세웠다.
정식 후보가 되려면 11월 25, 26일 기탁금 5억 원을 내고 등록을 해야 하는데, 이들 대부분은 정식 후보 등록에 대해선 “글쎄…”라는 반응을 보였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