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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기자의 히트&런]권혁의 공이 무서운 이유

입력 | 2007-05-29 03:03:00


며칠 전 한 구단 직원이 “8개 구단 투수 가운데 타자들의 방망이를 가장 많이 부러뜨리는 선수가 누군지 아세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당연히 강속구 투수겠지’라는 생각에 시속 150km 후반대의 공을 던지는 KIA 한기주와 롯데 최대성의 이름을 댔다.

그 직원은 고개를 젓더니 빙긋이 웃으며 답했다. “정답은 전병호예요.”

삼성 왼손 투수 전병호는 대표적인 슬로 볼 투수다. 140km가 넘는 직구를 좀처럼 보기 힘들다.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공이 느리다 보니 타자들의 방망이가 대개 빨리 돌아요. 그래서 끝에 걸리면 종종 부러지는 거죠”라고 말했다.

야구에는 이처럼 의외성이 곳곳에 숨어 있다. 삼성의 왼손 강속구 투수 권혁도 그렇다.

권혁은 현역 왼손 투수로는 가장 빠른 공을 던진다. 올해 벌써 155km를 스피드건에 찍었다. 일반적으로 왼손 투수의 빠른 공은 희소성 때문에 오른손 투수보다 3∼4km 이상 빨라 보인다고 한다. 그러니까 권혁은 160km에 육박하는 빠른 공을 던지는 것이다.

이만하면 타자들이 “타석에 들어서기가 무섭다”고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왼손 타자들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타자들에게 진정한 공포의 대상은 그의 ‘불안정한’ 제구력이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그의 공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때로는 머리 쪽으로 날아오기도 하고, 때로는 어처구니없이 바깥쪽으로 빠지기도 한다. 이른바 대책이 서지 않는 스타일이다.

심판들도 무서움을 호소하긴 마찬가지다. 오석환 팀장은 “권혁의 공은 마치 무거운 돌덩이가 포수 미트에 퍽 하고 박히는 것 같다. 가끔 포수가 못 받아서 나한테 날아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 무서울 때가 있다”고 한다.

권혁은 28일 현재 56탈삼진으로 ‘괴물 투수’ 류현진(한화·62개)에 이어 이 부문 2위를 달리고 있다. 중간 계투로는 이색적인 성적이다. 이닝당 탈삼진은 1.57개에 이른다.

만약 권혁이 스피드를 줄이는 대신 제구에 더 신경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 성적은 좋아질지 몰라도 탈삼진은 줄어들 게 확실하다.

권혁과 전병호는 야구를 보는 또 다른 재미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