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소설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 씨(오른쪽)가 독자 70명과 남한산성 답사에 나섰다. 김 씨가 소설의 무대인 남한산성 서문(인조가 청나라에 항복을 알리기 위해 나갔던 문) 앞에서 독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유성운 기자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이 특별한 데이트를 했다. 29일 독자들과 남한산성 답사에 나선 것. 인터넷 서점 ‘YES24’의 인터넷 접수를 통해 선정된 70명이 그 행운의 주인공이 됐다.
산성에 오르는 길은 비까지 흩뿌리며 쌀쌀했지만 독자들은 준비된 우의를 껴입으며 김 씨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열중했다.
“인조가 항복하러 나간 남한산성의 서문은 이렇게 입구가 작아 말을 타고 지나갈 수 없습니다. 영어 표기도 남문은 south gate인데 서문은 west door더군요.”
느리면서도 낮은 톤의 김 씨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자 뒤편의 사람들은 “죽 한 그릇도 못 드신 분처럼 목소리가 작습니다. 더 크게 해 주세요”라는 협박성(?) 간청을 하기도 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남한산성의 정상에 있는 수어장대 견학. 수어사 이시백이 청군의 동태를 살피며 방어군을 지휘하던 곳이다. 김 씨는 “이곳에선 멀리 송파나루의 삼전도까지 볼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지만 자욱한 구름에 가려 ‘치욕’의 상징인 삼전도비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날 답사엔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고생하는 남편에게 김훈 씨의 조언을 들려주고 싶다는 아내, 남한산성의 고통을 설명하기 위해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온 어머니 등 다양한 동기의 독자들이 참가했다. 12대 조상이 남한산성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이영구(74·서울 강남구 역삼동) 씨는 “‘남한산성’을 읽기 전에는 그분이 그런 고통과 치욕을 당했다는 것이 와 닿지 않았다. 이제는 종친들과 매년 찾아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