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이곳은 멕시코인의 땅이었다. 그런데 누더기를 입은 미국인이 떼 지어 들어왔다. 땅에 대한 욕망이 너무나 강했던 그들은 대지를 함부로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1848년 5월 30일 멕시코는 자기 영토의 거의 절반을 미국에 양도하는 조약에 비준했다.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 지금의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 애리조나, 네바다, 콜로라도 주 등 한반도의 6배나 되는 광활한 대지를 1500만 달러라는 헐값에 넘기는 내용이었다.
정신 나간 지도자가 아니라면 이런 불평등 조약을 승인했을 리가 없다. 멕시코는 1846년부터 2년간 벌어진 미국과의 전쟁에서 졌고, 패전의 대가는 이처럼 가혹했다.
이 전쟁은 당시 미국 내에서도 큰 논란거리였다.
미국의 세계적인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미국 민중사’에서 멕시코전쟁을 이렇게 기술했다.
“미국이 더 많은 사람에게 민주주의의 축복을 줘야 한다는 사고가 호전성의 기반이 됐다. 여기에 아름다운 땅에 대한 동경,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상업적 모험심도 뒤섞여 있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유명한 시인 월트 휘트먼 같은 이는 “멕시코를 철저히 응징하기 위해 무기를 들자”며 전쟁을 독려했다.
미 언론들도 “이 기름진 땅이 거친 무성함 속에 잠자게 둘 것인가”라는 전쟁 찬성론과 “칼로 나라를 팽창시킨 로마제국의 비참한 말로(末路)에서 무얼 배웠느냐”는 반대론으로 나뉘어 나라 전체가 어수선했다.
그러나 선민(選民)사상과 팽창주의가 전쟁의 가장 큰 원인이었음을 지금은 부정하는 사람이 드물다.
멕시코는 신흥 강국이었던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전투마다 승리를 거듭한 미국은 단숨에 수도인 멕시코시티를 포위해 항복을 받아냈다.
이 전쟁으로 양국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렸다. 젖과 꿀이 흐르는 서부의 옥토를 가져온 미국은 캘리포니아에서 쏟아져 나온 금맥으로 국운(國運)을 열었다. 서부 대개발의 시대가 열린 것도 이 즈음이다.
반면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해 중흥의 새 역사를 꿈꾸던 멕시코는 패전 이후 잦은 내란과 경제난을 겪으며 2등 국가로 전락했다. 멕시코 사람들은 현재 양국의 국경선인 리오그란데 강을 ‘분단의 상처’라 부른다. 한국인이 두만강을 바라볼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한(恨)이 그들에게도 서려 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