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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분양가 심의 이런 일이…건축 모르는 자문위원 많아

입력 | 2007-05-30 03:02:00


황당… 주택 원가자료 이해 못해 “???”

엉뚱…“동 배치가 왜…” 다른 항목 트집

중견 건설업체인 월드건설은 올해 초 경기 파주시 교하택지개발지구에서 타운하우스(고급 연립주택의 일종)를 공급하려 했지만 일정이 한 달가량 늦어졌다.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거치도록 한 ‘분양가 자문위원회’ 자체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문위를 개최하려면 위원 9명 중 최소한 5명은 참석해야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민간 위원들이 불참해 정족수에 못 미쳤다.

월드건설 측은 “인허가가 지연되면 그만큼 금융비용이 늘어나 소비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 분양가를 낮추기 위해 설치한 자문위가 오히려 가격 상승 요인만 제공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분양가 자문위의 역할이 논란을 빚고 있다. 전체적으로 분양가를 안정시킨 공은 있지만 위원들이 주택 원가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문에 응해도 형식적인 경우가 많다.

특히 9월부터 분양가 상한제가 전면 시행되면 자문위의 역할을 확대 강화하는 ‘분양가 심사위원회’가 지자체별로 마련될 예정이어서 내실 있는 운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분양가 심의하는데 주차장 타령

최근 경북지역에 아파트를 짓기 위해 분양승인을 신청한 A사는 자문위원들로부터 주차장의 동선(動線)이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분양가 자문위는 말 그대로 분양가격이 적정한지를 심의하는 곳인데 난데없이 건축 설계에 관한 사항을 따지자 난감해진 것이다.

충남 천안시에 아파트를 공급할 예정인 B사도 마찬가지. 자문위에서 각 동(棟)의 배치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와 어리둥절해했다.

A사 관계자는 “9, 10명의 자문위원 중 건축 관련 종사자가 아닌 위원들은 분양원가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분양가 외의 항목에 대해 트집을 잡는 때가 종종 있다”고 귀띔했다.

○ “분양가 심의자료 만들어 드립니다”

이렇게 되자 건설사를 대신해 전문 대행 업체가 자문위에 제출할 원가 관련 자료를 만들어 주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다음 달 경기 용인시 흥덕지구에 타운하우스를 내놓을 예정인 우남건설은 자문위원을 설득할 방법을 고심하던 중 전문 기관에 용역을 맡겼다.

자료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왕이면 이해하기 쉬운 보고서를 제출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수수료는 원가의 1%.

용역을 맡은 대한경제연구원 박계춘 팀장은 “분양가 상한제가 전면 실시되면 일이 많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건설사 임원은 “대행사를 동원해 원가자료를 제출하면 결국 분양가를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보고서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철저히 분석해 검증하는 게 자문위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 자문위원 개별 관리도

분양가 자문위는 각 지자체가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기관은 아니다. 위원들의 법적 책임도 없다.

하지만 자문위의 ‘분양가 권고안’은 현실적으로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위원들을 개별적으로 ‘관리’하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자문위원으로 있는 대학 교수들에게 별도로 설계 용역을 주겠다든지 하는 식으로 접촉할 방법을 찾고 있다”며 “로비가 통할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고 털어놨다.

건설교통부는 9월부터 분양가 심사위원회가 법제화되면 부당한 심사를 방지하기 위해 수뢰 등이 적발될 경우 해당 심사위원을 공무원으로 간주해 사법기관에 고발할 방침이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