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 여성들이 술집으로 몰리고 있다. 기업체 취업이 안 되기 때문이다. 모던 바(Bar), 섹시 바는 물론 단란주점, 룸살롱에서 일하는 여성들도 다수다.
통계청의 ‘2006년 고용동향’에 따르면 4년제 대졸 이상 실업자 수는 16만4000명으로 전년(14만4400명)보다 13.6% 늘었다. 이 중 20대(20~29세) 실업자 수는 8만4300명으로 전년(6만6500명)에 비해 26.8% 증가했다.
이런 상황은 올해도 개선될 기미가 안 보인다. 기업체 채용 규모가 대폭 줄어들면서 더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최근 100인 이상 고용기업 709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2007년 채용 전망’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에 비해 올해 채용은 21.4% 줄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 이후 최악이다. 특히 대졸 이상 학력자 채용은 30.4%나 줄었다. 최근에는 기업체들이 경력직 채용을 선호해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의 시름을 더하고 있다.
대졸 여성들이 주점으로 발길을 돌리는 밑바탕에는 이런 현실이 깔려 있다. 정확한 수치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서울 종로의 한 유흥주점 업주는 “우리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 중 20~30%는 대졸자이며 주변의 업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청년실업 100만 명 시대’를 살아가는 20대 여성들의 현주소를 취재했다.
“말장난만 늘어놓는 정부, 정말 기막혀…”
“일할 데가 없어요.”
서울 서대문구 M바(Bar)에서 만난 오진희(25) 씨의 하소연이다. 오 씨는 지난 2005년 서울 소재 S대를 졸업했다. 이후 기업에 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요즘 신입사원을 뽑는 회사가 얼마나 되나요. 있다고 하더라도 몇 명 뽑지도 않고요. 정부에서는 일자리 몇 십만 개 창출이니 청년실업 대책이니 하며 말잔치만 하고 있어요. 더구나 청년 실업률이 줄었다는 이상한 통계 자료를 내놓는데, 현실을 제대로 알고서 그러는지 정말 기가 막혀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최근의 실업률 하락 및 고용률 정체요인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말 현재 15∼24세 청년층은 모두 598만3000명이다. 이 중 취업자는 162만7000명으로 27.2%에 불과하다. 실업자는 16만9000명으로 2.8%다. 이들이 소위 경제활동 인구다. 나머지 70%인 418만6000명은 비경제활동인구다. ‘취업 의사가 없고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취업 포기자’를 의미한다. 오 씨는 자기와 같은 취업 포기자를 실업률에 포함시키지 않은 정부의 통계자료에 냉소를 보낸 것이다.
오 씨는 지난해 취업이 100% 보장되는 K전문대 치위생과에 재입학했다. 치과에서 간호 보조로라도 일하기 위해서다. 그만큼 그에게 일자리는 절실했다.
“고등학생 때 4년제 대학 가려고 기를 쓰고 공부한 게 참 허탈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전문대 가서 기술을 배웠을 거예요. 전문대 나오면 그나마 일자리 구하는 건 수월하잖아요.”
오 씨는 전문대에 입학한 후부터 밤이면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비 때문이다. 강남·북 술집을 오가다 올 4월부터 지금의 M바에서 일해오고 있다.
북창동 대졸 여성 “취직이요? 포기한 지 오래예요”
서울 북창동 K클럽에서 일하는 이진선(25) 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해 강원도 G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로 올라왔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취직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학교 다닐 때 선배들이 ‘지방대생이 서울에서 취직하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했는데, 정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뼈저리게 느꼈어요. 석박사급이나 해외유학생들도 일자릴 구하려고 몰리는 판이니…, 학점이나 자격증 같은 건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더군요.”
서 씨는 1년간 구직 활동을 한 후 단념했다. 이후 고향 친구의 권유로 작년 5월경 북창동에 발을 들여놨다. 친구 또한 상경 후 취직이 안 돼 북창동에서 일하고 있었다.
서 씨는 “여기서 돈 모아서 고향에 내려가 레스토랑 같은 가게를 열려고 해요”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꿈이 하루하루의 고달픔을 잊게 한다고 했다.
K클럽 김민수 상무는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 여대생이라고 거짓말 하는 여자들도 있긴 하지만 정말 4년제 대졸 여성들이 많다. 보통 한 업소에는 40명 정도의 아가씨가 일하고 있는데, 그 중 20~30%는 대졸 여성이다”고 귀띔했다. 업소 당 10명 이상의 여대생이 졸업 후 취직을 하지 못하고 유흥주점의 문을 두드린 셈이다.
김 상무는 “취직을 위해 서울로 올라온 지방대생들이 꽤 있다. 일자리는 못 구했지 고향으로 돌아갈 면목은 없지 먹고는 살아야지…. 그런 고민 끝에 이쪽으로 온다”고 했다.
여대생 “대학졸업장=백수 증명서”
‘주점행’은 재학 중인 여대생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 D대 4학년에 재학 중인 이민희(23) 씨. 그는 종로의 A섹시 바에서 밤 9시부터 이튿날 새벽 5까지 일한다. 이 씨는 지난해 말부터 대학원 진학과 전문대 재입학을 놓고 고민 중이다.
“대학 졸업장이 곧 백수 증명서 아닌가요. 저의 적성을 살려서 일하고 싶은데, 어려울 것 같아요. 실업자가 웬만큼 많아야죠. 주위 선배나 친구들을 보면 취업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전문대에 다시 입학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해요.”
최근 이 씨에게 새로운 고민이 하나 더 생겼다.
“여기서 일하면 월 300만 원 정도 벌어요. 취직하면 이 정도 급여를 주는 데가 있을까요. 몸이 좀 힘들긴 해도 제 가치에 따라 대우해주고 이쪽 업계에선 취직도 잘되고…. 여기서 돈 모아서 가게를 차려볼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이 업소의 조설근 실장은 “여대생들의 취업이 어렵긴 어려운가 보다. 외모에 자신 있는 여대생들이 많이 지원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아가씨들 대부분이 전문대나 4년제 대학에 적을 둔 여대생이라고 보면 된다. 다른 업소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대우를 해주기 때문이다”고 했다.
그는 “특히 여름·겨울방학 때면 일하려는 여대생들이 줄을 잇는다. 방학 동안 일하면 학비 정도는 벌 수 있기 때문이다”고도 했다.
“우리의 아픔과 눈물 얼마나 아나요”
대졸 실업여성들이 모두 술집으로 발길을 옮기는 건 아니다. 그러나 앞서 소개한 여성들에게서 ‘우리시대 자화상’의 일면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여성의 외침은 아직도 오롯하다.
“술집에서 일한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대학 졸업하고 이런데서 일한다고 혀를 차는 어른들. 그들이 과연 취업을 못해 술집에서 일하는 우리의 아픔과 눈물을 알기나 할까요.”
*인터뷰에 응해준 여성들과 업소 관계자들의 이름은 가명임을 밝힙니다.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