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미국 뉴저지 주의 페닝턴스쿨에서 소설가 이문열 씨가 20여 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자신의 작품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주제로 한 특별 수업을 하고 있다. 페닝턴=공종식 특파원
29일 미국 뉴저지 주에 있는 사립중고교 페닝턴스쿨의 한 강의실. 이날은 ‘특별한’ 교사가 초청됐다.
소설가 이문열 씨가 자신의 작품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Our Twisted Hero)’을 주제로 특별 수업을 시작했다. ‘동아시아 문학’ 수업 시간에 영어로 번역된 이 소설을 읽은 11학년(한국 기준으로 고교 2년) 학생 20여 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 씨는 “1987년 한국 정부가 정당성이 결여된 정권을 유지하려 4·13 호헌 조치를 내놓았을 때 한국 지식인이 느낀 황당함과 당혹스러움을 묘사함으로써 당시 진실의 ‘모퉁이’를 보여 주고자 이 소설을 썼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엄석대가 누구를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정통성이 결여된 정권, 나아가 당시 대통령을 우의적으로 빗댄 것”이라고 답하면서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가 “혹시 소설에 나오는 첫 번째 담임선생님(엄석대를 용인하는 역할)이 누구인 것 같으냐”고 묻자, 바로 ‘미국’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 씨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정확히 맞혔다. 당시 미국은 독재자라도 미국의 이해관계에만 어긋나지 않으면 용인한다는 외교정책을 폈다. 그 점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소설에 나오는 두 번째 선생님(엄석대를 철저히 파괴하는 역할)은 경직된 이념을 상징한다. 지금 한국 국민은 두 번째 담임선생님을 만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페닝턴=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